2010년 5월 18일 화요일

100518. 비오는 화요일...나는 달리고 달렸다..

비가 온다.
봄비라고 하기엔 어색한 비가 온다.
이 비가 그치면 따뜻해지려나 다시 추워지려나 종잡을 수 없는 오락가락하는 비.


며칠 새 이틀 간격으로 달렸더니 몸과 마음이 지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즐거웠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반갑지 않거나 부담스러운 사람은 만날 수도 없어.
몸이 말을 안 들어.

무더기로 만나다 보니 인사만 나누고 그냥 술만 펐던 것 같아.

반가워서 마시다 택시에 몹쓸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오랜만이라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술잔을 들기도 하고,
술도 덜 깬 지친 노구를 끌고 동기 모임 갔다가 술 안 먹고 안주만 축낸다고 구박만 잔뜩 먹고,
새벽 한 시에 고등학교 친구네 잠자러 갔다가 친구 남편 보기만 미안하고,
이래저래 민폐도 끼치고 부족한 이야기에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만나길 잘했어.

하지만 난 달리기보다는 걷는 게 체질에 맞는 거 같아.
담에 만나면 천천히 걷는 기분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눈도 맞추고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지.

2010년 5월 6일 목요일

D+365. 100430. 금. 드디어 그리고 무사히 1년 만에 한국으로...

2009년 5월 1일 떠났던 한국,
2010년 4월 30일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방콕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 2시간 비행을 거쳐,

쿠알라룸푸르 LCCT 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9시간의 기다림,

다시 쿠알라룸푸르에서 인천까지 약 6시간의 비행.

한국은 유럽에 비하면 참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곳을 1년만에 돌아간다. 1년만에 돌아올 곳을 우리는 왜 떠났을까? 1년 동안 난 뭘 보고, 뭘 느꼈을까? 뭐가 달라졌을까? 뭐가 달라지긴 달라졌을까?

비행기는 이착륙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사고 위험이 높아, 승무원들도 안전에 안전을 확인하고 조심하는 긴장되는 순간이다. 우리도 나라와 나라를 이동할 때 가장 많은 돈이 많이 들고 가장 신경이 예민해진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다보니 일반 여행자보다 2배 3배는 짐이 더 많다. 리스본에서 자전거를 먼저 프랑크푸르트로 부치고 바르셀로나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갈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올 때 불어난 짐들에 과연 추가부담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관건이었다.

1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방콕에서 쿠알라룸푸르, 쿠알라룸푸르에서 인천으로 마지막 비행이 남아 있다. 과연 우리의 자전거, 짐들과 함께 과연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를, 우리 자전거를 무사히 아무 불평불만없이 한국으로 보내줄것인가? 공항 직원들만 보면, 보딩을 하러 갈 때면 가슴이 콩알만해진다.
방콕 카오산에서 타는 리무진 AE2에 실은 자전거 박스. 한 박스당 50B의 추가 비용을 내면 실어준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정신없이 자전거 박스를 두 개에서 세 개로, 세 개에서 다시 두 개로 풀었다 쌌다 하면서 어느새 이골이 났다.
하도 싸고 풀었다 싸고 풀었다 해서 구멍이 나 버린 박스.

통은 있는 힘껏 박스를 오무리고 나는 테이프를 뜯어 볼펜으로 짝짝 끊어 붙이면서 우리 공항에서 반값에 포장서비스나 할까 하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조금씩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2010년 4월 30일 오천 6시 30분.
한국을 떠난 지 꼬박 1년 만에 무사히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슴이 설렌다.

1시쯤 샌드위치를 먹고 잠이 들고, 5시쯤 다시 기내식을 주었는데 졸음이 밀려와 졸다 보니 어느새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빠져나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쌀쌀한 날씨가 우리를 반긴다.
기내방송에서 8도라고 했지? 8도?
연일 38도 이상의 날씨에서 5개월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감이 잘 가지 않는 날씨다.

쌀쌀한 날씨에 정신이 들었나, 생각해 보니 비행기에다 일기장을 놓고 내렸다. 짧은 다리로 헐레벌떡 탑승구로 달려가니 벌써 문이 닫혔다.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짐을 놓고 내렸다고 부탁해 다시 문을 열고 비행기로 들어갔다. 자리를 찾아가는데, 통이 흘리고 간 자전거가방 끈이 보인다. 이론 나만 흘린 게 아니었네. 자리에서 무사히 일기장을 찾아 나왔다. 십년감수한 순간.

자전거를 찾고 출구를 빠져나왔다. 출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께서 공항에 나오시겠다는 걸 리무진을 타고 가겠다고 나오지 마시라고 했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 이제 정말 한국이구나.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구나 안도감이 밀려든다.

마지막 남은 관문은 자전거 박스를 싣고 무사히 안양 시댁으로 가는 것. 리무진노선표를 둘러보니 '석수동'을 지나는 리무진이 보인다. 한 장에 9,000원씩 표 두 장을 끊고 8시 50분 버스를 기다렸다. 리무진이 도착해서 자전거를 실으려하니 한 대당 2,500원 해서 5,000원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한다. 비싼 금액도 아니고 실을 수도 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우리나라도 참 좋구나.

짐칸에 자전거박스를 싣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집까지 1시간 남짓 남았다. 인천대교를 건너 광명을 거쳐 안양으로 오는 길. 아, 봄이구나. 겨우내 메말랐던 산자락에 파릇파릇 새순이 돋은 나무들이 참 이쁘다. 어, 꽤나 나무가 많아 보이네. 이렇게 나무들이 많았나?

따뜻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버스는 KTX 광명역을 지나치고 있다. 석수역 앞 중앙차로에 도착했다. 자전거박스를 번쩍 들어 길 건너 주유소앞으로 옮겨 어머니와 아버님을 기다렸다.

바람부는 안양대로에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오매불망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던 어머니, 아버님이 나타나셨다. 우리 어머니, '아이구, 우리 애기! 별일 없었어?' 하시며 꽉 끌어안아 주신다.

아버님 차 뒷좌석에 자전거 박스 하나, 자전거 박스 풀어 자전거 한 대를 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1년을 떠돌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