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9일 화요일

1년 전 오늘,..09년 6월 29일 월요일

어제 통과 함께 안양천을 걸으면서 1년 전 어디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일에서 덴마크로 넘어가려던 시기였다. 오랜만에 여행 수첩을 꺼내 찾아보니 우리의 기억이 맞았다. 일기장을 아낀다고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이 적은 일기가 반갑다.

09년 6월 29일 월요일. 06:30 AM. 또 다시 찾아온 월. 덴마크로 간다.
침낭 안이 덥다. 가끔 물 떨어지는 소리. 아, 어젯밤에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들렸다. 항구 가까이여서 그런가. 숲에선 온갖 새들 소리가 들린다. 독일은 야생 새들의 천국인 것 같다. 이상한 꿈-오빠가 술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불길하다. 왜 오빠는 그렇게 남을 탓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걸까? 통 코고는 소리, 새소리, 간간히 기차소리, 차소리.

오늘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독일 북부 날씨는 아침 흐리고 비, 저녁이면 맑은 하늘을 보인다. 지금이 몇 시일까? Fermann burg 공원. Fermannsund bruke를 넘기 위해 같은 길을 한 바퀴나 돌았다. 들판 옆길 닫힌 철문을 열고 나가야 207번 도로를 탈 수 있다. 옘병! 가는 길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오는 길은 아주 simple하면서. 한 할아버지의 설명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기 전 통이 아주 비장하게 앞서 나가면서 외친다.
"내 뒤에 따라붙어! 바람이 많이 부니까!"
Fehmannsund bruke는 한 500미터나 될까? 생각만큼 바람은 세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통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하다.

*주행기록
주행거리 : 44.44km
주행시간 : 3:24:08
평균속도 : 13.0km
최고속도 : 28.9km
총 거리 : 636.2km

*쓴 돈 :
1)슈퍼마켓 penny에서
pilsner 맥주 6병*0.5l 1.69유로
플라스틱 병보증금 1.50유로
돼지고기 완자(술안주) 1.75유로
스파게티 500g 0.49유로
오이 0.39유로
5.82유로(약 10,000원)

2)엽서 1.05유로

*합계 : 6.97유로(약 12,000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덴마크로 가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를 떠나 며칠째 달리던 날이었다. fehmann이라는 섬을 넘어 배를 타고 덴마크로 가야 하는데, fehmann 섬으로 가는 도로를 눈앞에 두고 진입로를 찾지 못해 몇 바퀴를 돌았던 것이 기억난다.


통로를 찾고 보니 개구멍만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는 사람만 다닐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씩씩거리며 찾아헤매다 fehmann 섬에 도착해, 도착한 기쁨과 이제 곧 덴마크다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슈퍼에 가서 플라스틱 맥주 6병(싸서 아주 머리가 아픈 술)과 돼지고기 완자를 사서 낮술을 마시고 퍼졌다. 술을 마시고 취한 나는 오늘 저녁 덴마크 가는 배를 못 타겠다, 통은 왜 못 타냐, 덴마크 넘어가서 텐트 칠만한 곳을 바로 찾겠냐, 차라리 여기서 하룻밤 더 자고 내일 넘어가자 대판 싸우고 말도 안 하고 잤던 안 좋은 기억도 더불어 떠오른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날도 많았지만,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평생 싸울 걸 다 싸우고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우린 가끔씩 싸운다. 싸움은 싸움일 뿐 삐치지 말자. 아, 이 질기고도 질긴 애정이여!

어떤 여행 이야기를 골라 읽어야 하는가?

어떤 여행 이야기를 골라 읽어야 하는가?

인생이 여행이고, 여행이 인생이다. 따라서 여행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여행을 가까이 하는 일은 인생을 배우는 데 있어서 여간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여행이란 이름이 붙어나오는 여행 이야기가 하루에도 수십 종, 수백 종에 이르는데 그 많은 여행 이야기들 가운데서 어떤 것을 골라 읽어야 하는가? 이것도 매우 필요한 결정이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결정적인 것이 된다.

좋은 여행 이야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마치 훌륭한 스승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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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계문학전집의 추천사인 '어떤 작품을 골라 읽어야 하는가'에 나오는 '문학'이라는 단어를 '여행'으로 바꾸어 보았다.

인생이 문학이고 문학이 인생이다. 따라서 문학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문학작품을 가까이 하는 일은 인생을 배우는 데 있어서 여간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문학이란 이름이 붙어나오는 작품이 하루에도 수십 종, 수백 종에 이르는데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어떤 것을 골라 읽어야 하는가? 이것도 매우 필요한 결정이다. 어떠한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결정적인 것이 된다. 좋은 책을 대하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은 마치 훌륭한 스승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그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문학'이라는 단어를 '여행'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여행과 문학은 동격이다?
실로 좋은 책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접하게 해 주고, 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게 해준다. 직접 두 발로 찍고 돌아다니는 여행은 넓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게 되고, 다른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는 간접 경험과 대리 만족이 되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많은 여행책을 사서 모았고, 여행 이야기, 기행문, 역사, 문화, 예술 등 많은 책들이 낯선 곳에 대한 여행을 꿈꾸게 해주었다.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가 내 가슴에 불을 질러 주었듯이 시덥잖은 나의 여행 이야기가 여행을 꿈꾸는 누군가의 가슴을 사정없이 불질러 주었으면 좋겠다.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100625. 금. 소소한 일상이 기다려진다.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벌써 두 달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통과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여행 내내 매일 쓰던 일기도 쓰지 않고, 보고 대회처럼 쓰던 블로그도 개점휴업 상태로 내팽개쳐 두었다. 내 맘이 요즘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을 여행하면 좋겠다 싶었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나 남도 자전거 여행도 좋고, 산티아고를 달리면서 제주도 올레길이라든지 지리산 둘레길도 걸어보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 집이 없는 상태로 동가숙 서가식 하다보니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만났던 건 아니다. 친구들도 만나고 산청에도 두번 다녀왔고, 괴산도 잠깐, 짧게 남도 여행도 다녀왔다. 때론 지치기도 했고, 때론 휴식도 되었다. 모두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인데, 그동안 외국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둘이서만 빈둥거리다 한꺼번에 사람들을 만나려니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위장, 간장이 버텨내지도 못했던 것 같고. 그래도 모두 반가웠다.


7월 말경에 새 집으로 이사를 갈 것 같다. 이사 가기 전까지 좀더 시댁에서 지내야 한다. 어머니 냉장고 옆에 우리 냉장고, 어머니 세탁기 옆에 우리 세탁기, 어머니 장농 앞에 우리 장농, 우리 서랍장 위에 어머니 서랍장, 한 방 가득 채워져 있는 책장과 책들...을 추스리고 이사 준비를 해야 한다. 냉장고도 정리하고, 안 입을 옷도 정리하고 해야 하는데, 아직 시간이 있어서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금 가장 기다려지는 건, 손으로 빡빡 문질러 빤 빨래를 탁탁 털어, 좋은 볕에 말리고, 빨래가 마를 때까지 책 읽다가 졸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다.



덴마크를 달리다 발견한 빨래

프랑스 순례자용 숙소에 널린 순례자 빨래


스페인 어느 가정 집에 널린 빨래

스페인 순례자의 길 순례자용 숙소에 걸린 빨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