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통과 함께 안양천을 걸으면서 1년 전 어디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일에서 덴마크로 넘어가려던 시기였다. 오랜만에 여행 수첩을 꺼내 찾아보니 우리의 기억이 맞았다. 일기장을 아낀다고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이 적은 일기가 반갑다.
09년 6월 29일 월요일. 06:30 AM. 또 다시 찾아온 월. 덴마크로 간다.
침낭 안이 덥다. 가끔 물 떨어지는 소리. 아, 어젯밤에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들렸다. 항구 가까이여서 그런가. 숲에선 온갖 새들 소리가 들린다. 독일은 야생 새들의 천국인 것 같다. 이상한 꿈-오빠가 술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불길하다. 왜 오빠는 그렇게 남을 탓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걸까? 통 코고는 소리, 새소리, 간간히 기차소리, 차소리.
오늘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독일 북부 날씨는 아침 흐리고 비, 저녁이면 맑은 하늘을 보인다. 지금이 몇 시일까? Fermann burg 공원. Fermannsund bruke를 넘기 위해 같은 길을 한 바퀴나 돌았다. 들판 옆길 닫힌 철문을 열고 나가야 207번 도로를 탈 수 있다. 옘병! 가는 길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오는 길은 아주 simple하면서. 한 할아버지의 설명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기 전 통이 아주 비장하게 앞서 나가면서 외친다.
"내 뒤에 따라붙어! 바람이 많이 부니까!"
Fehmannsund bruke는 한 500미터나 될까? 생각만큼 바람은 세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통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하다.
*주행기록
주행거리 : 44.44km
주행시간 : 3:24:08
평균속도 : 13.0km
최고속도 : 28.9km
총 거리 : 636.2km
*쓴 돈 :
1)슈퍼마켓 penny에서
pilsner 맥주 6병*0.5l 1.69유로
플라스틱 병보증금 1.50유로
돼지고기 완자(술안주) 1.75유로
스파게티 500g 0.49유로
오이 0.39유로
5.82유로(약 10,000원)
2)엽서 1.05유로
*합계 : 6.97유로(약 12,000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덴마크로 가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를 떠나 며칠째 달리던 날이었다. fehmann이라는 섬을 넘어 배를 타고 덴마크로 가야 하는데, fehmann 섬으로 가는 도로를 눈앞에 두고 진입로를 찾지 못해 몇 바퀴를 돌았던 것이 기억난다.
통로를 찾고 보니 개구멍만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는 사람만 다닐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씩씩거리며 찾아헤매다 fehmann 섬에 도착해, 도착한 기쁨과 이제 곧 덴마크다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슈퍼에 가서 플라스틱 맥주 6병(싸서 아주 머리가 아픈 술)과 돼지고기 완자를 사서 낮술을 마시고 퍼졌다. 술을 마시고 취한 나는 오늘 저녁 덴마크 가는 배를 못 타겠다, 통은 왜 못 타냐, 덴마크 넘어가서 텐트 칠만한 곳을 바로 찾겠냐, 차라리 여기서 하룻밤 더 자고 내일 넘어가자 대판 싸우고 말도 안 하고 잤던 안 좋은 기억도 더불어 떠오른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날도 많았지만,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평생 싸울 걸 다 싸우고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우린 가끔씩 싸운다. 싸움은 싸움일 뿐 삐치지 말자. 아, 이 질기고도 질긴 애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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