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소박한 책장]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오랜만의 포스팅이다. 잘 지내고 있다.
슬슬 게으름으로 복귀하고 있는 중이다.

아주 잠깐 동안 내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설렘에 손님맞이 준비, 집안정리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귀차니즘 요요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아마도 20개월을 붙어 지내던 통이 학교로 복귀함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게으르면서 간소한 생활로 돌아서고 있다.

매일같이 내리는 국지성 폭우도 한몫하는 것 같다. 뭔가를 해야지 싶으면 어느새 온몸이 끈저끈적해지는 신호를 보내며 이내 소나기를 퍼붓는 이 날씨. 예전에도 한국 날씨가 이랬는지 왜 이리 비를 퍼붓는지 궁금하다.

그나마 1주일에 한번 나무와숲에 가는 것으로 게으름을 극복하고 있다. 나무와숲에 가기 전날인 월요일까지 까라져 있다가, 나무와숲에서 돌아온 화요일은 잠깐 의욕에 차 있다가 서서히 하향곡선을 탄다. 그러려니.

이번 주 화요일에는 나무와숲에 가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불르는 숲>을 빌려왔다. 시니컬한 상상의 세계 '멋진 신세계'를 읽다 다소 당황스러워 펼친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4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3일 만에 다 읽었다. 400페이지라 해도 어렵거나 무거운 내용이 아니니 누구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금방 읽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으로 알려진 빌 브라이슨. 여행 중 헌책방에서 빌 브라이슨의 책을 워낙 많이 발견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일까, 내용일까 심지어 영어로 된 책이라도 사서 볼까 유혹에 빠졌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나무와숲에도 소장하고 있어 펼쳐 보긴 했는데, 과학에 대해 문외한이며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무리였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책이 <나를 부르는 숲>이었다. 원제는 'A walk in the woods'이다. '숲에서 걷기'.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숲에서 걷고 또 걷는 이야기이다.

자연과 과학의 해박한 지식과 넘치는 유머로, 18kg 배낭을 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내렸을 그의 고통에 대한 안쓰러움보다 시종일관 킬킬거리며 읽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 20년 동안 기자 생활을 마친 빌 브라이슨은 고국에 도착해 뉴잉글랜드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에 정착한다. 우연히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져 가는 길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길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이라는 길이었고,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불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의 동부 해안을 따라 고요히 솟아 있으면서 은근히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 위로 굽이굽이 3,360킬로미터나 흐르는 길이라 한다.

흔히 '산티아고'로 알려진 '순례자의 길'이 프랑스 남부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까지 850km에 이르는 길이니 그 4배에 이르는 길이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 사연이 많은 길이 참 많은 것 같다.
빌 브라이슨은 3400여 킬로미터 대장정을 떠나기 위해 여러 가지 구실을 찾았다.

14쪽.
게을러 터졌던 수년간의 생활을 바로잡을 기회다. 20년간 해외에서 생활하다 돌아왔으니 조국의 장관과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명분도 있지 않은가. 또는 거친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것도 유용한 일이다.
가야할, 더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있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성한 수종을 자랑하는 위대한 숲의 하나인데,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그 길고 웅장하고 시종일관 힘들고 때로는 아름다울 그 길을 혼자 떠난 건 아니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다(Neither Here nor There)>에서 어릴 때 유럽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 카츠와 함께 길을 떠난다. 서로에게 잔뜩 화가 난 채 여행을 시작했다가 서로를 경멸하면서 여행을 끝낸 뒤, 25년 동안 고향을 찾을 때 서너 차례 외에는 본 일이 없었던, 삶이 이러하듯 이름만 친구로 남아 있늘 뿐 인생의 길이 명확하게 갈린 그 친구 '카츠'와 함께 말이다.

아무리 그 길이 곰이 설치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그렇게 맞지 않아 보이는 친구와 떠날 수 있을까? 그만큼 떠나고자 하는 의욕이 분기탱천하고 적절한 동반자가 나서지 않을 절박한 때에는 그렇게도 되나 보다. 그래도 아예 모르는 이가 아니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적어도 그와 함께 여행을 한 적은 있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과 나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본다.

19쪽.
끝에서 끝까지 종주하려면 적어도 5개월이 걸리고 500만 번의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23쪽.
"데이브, 끈도 안 주고 방수도 안 되는 배낭 하나에 250달러나 내라는 말씀이야?"
-트레일 종주를 계획하고 빌 브라이슨은 등산용품을 사러 아웃도어매장에 간다. 거기서 생판 듣도보도 못한 온갖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점원과 장시간 용품들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고 등산객이 아닌 원정대에 가까운 물품을 사게 되는데, 그 물품들 값이 엄청나다. 기능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하나를 사면 끝나는 게 아닐 또 하나를 사야 된다는 것에 거품을 문다.

53쪽
3천 360킬로미터의 트레일 전 구간과 보조 트레일, 나무다리, 대피소, 표지판 등은 모두 자원봉사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지구상에서 자원봉자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최대 규모의 사업으로 뽑힌다. 또, 영예롭게도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았다.
-이야기를 읽으며 산티아고와 요즘 한국에서도 한참 인기절정인 제주도 올레길이 떠올랐다. 산티아고는 비싼 유럽 물가에 비해 '알베르게'라고 하는 순례자용 숙소가 있어 하루에 3~7유로만 내면 하룻밤을 잘 수 있다. 뜨거운 샤워는 물론이고, 부엌도 이용할 수 있어 운이 좋으면 누군가가 남겨 놓은 스파게티, 토마토, 양파, 감자 등을 이용해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다. 사설로 개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도 많지만, 무니씨팔 municipal이라고 시청, 또는 수도원에서 기부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도 많다. 알베르게에서 일하는 사람을 '호스피탈레'라고 하는데 모두들 산티아고를 몇 번씩 종주하고 그리고도 모자라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로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이다.

난 아직 제주도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을 가보지 않아서 그 길이 어떤지 모르겠다. 일반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숙소로 도미트리(도미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싸니까.)도 있고, 값도 싸다고 들었다. 그런 길에 개인이 욕심을 채우려는 배부른 자들이 숙박업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시립이나 도립으로 싸게 이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나 캠핑장, 저렴한 음식점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자원봉사자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54쪽.
이 광활한 세계로 가는 가장 가까운 관문 도시인 애틀란타에서 하루에 한 번 있는 기차를 트거나 두 번 있는 버스를 타고 게인즈빌까지 가야 하고, 거기서 다시 64킬로미터를 가야 트레일 출발점에서 11.2킬로미터 떨어진 주립공원까지 갈 수 있다.
-지은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접근성이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산티아고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에 대해 몰랐을 때는 시작지점이 생장피르포르인가 보다 했는데, 보르도 근처에서 프랑스 한 젊은 순례자를 만났다. 자기 집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잘 알려진 길이 4가지나 있고 포르투갈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도 있었다. 우리도 파리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남하했는데, 파리도 프랑스 순례자의 길 루트라는 걸 알았다면 그때부터 '알베르게(프랑스에서는 '쥐뜨'라고 한다)'를 이용하면서 가도 좋았을 걸 싶다.
산티아고로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다양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작하는 길은 프랑스 남부 '생장피르포르'이다. 대부분 파리에서 TGV를 타고 바욘으로 이동해 바욘에서 생장피르포르로 가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도착해서 생장피르포르에서 하루이틀 보낸 뒤 길을 떠난다. 아쉬운 건 선진국이라고 하는 프랑스가 교통수단의 선택권이 별로 없다는 거다. 우리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KTX도 있고, 새마을호도 있고, 무궁화호도 있는데, 프랑스는 어떤 구간은 TGV밖에 없다. 어디까지 낮은 등급을 타고 가다 어떤 구간-주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구간-은 TGV만 이용해야 한다. 이해가 잘 안 간다.
59쪽
등산할 준비는 끝났다. 비록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린 날들은 아니었지만, 수개월 동안 이날을 위해 기다려 왔다. 저기에 뭐가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미 전역에서 사람들은 출근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회사를 나가고 있고, 교통 체증과 매연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는 숲 속을 걸으려 하는 것이다. 도전하려는 의지가 불끈 솟구쳤다.

61쪽.
배낭을 둘러메자 무게 때문에 뒤로 휘청거렸다.-이걸 끄덕없이 들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68쪽
그가 배낭에 매달아 놓았던 모든 물건들을 절벽 너머로 집어 던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뭘 버린 거야?"
나는 놀라지 않은 척 애를 쓰며 물었다.
"빌어먹을, 더럽게 무거운 것들...... 페퍼로니, 쌀, 흑설탕, 스팸...... 몰라, 뭘 버렸는지. 하여튼 많이. 제기랄."
카츠는 자신이 생각했던 트레일이 아니란 듯, 마치 배신이나 당한 사람처럼 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가 생각했던 그런 트레일은 아닌 게 분명했다.
-길을 떠나기 전 호기 좋게 다 필요할 것처럼 바리바리 짐을 챙겼다가,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하나둘 버린다. 산티아고의 첫번째 관문이라 해야 할까 첫날부터 아주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 생장피르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탔던 우리도 하루종일 24km를 업힐을 하고 1km 다운힐을 해서 론세스바예스라고 하는 중세 수도원에 도착했다. 자전거에 짐을 달고 업힐을 하는 나도 정말 힘이 많이 들었다. 아니 이번 자전거여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산 하나를 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경험도 없고 감도 없었다. 그 이후에도 힘든 코스가 간혹 있었지만 피레네 산맥을 넘었는데 못할쏘냐 하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배낭을 메고 걷는 순례자들은 이 피레네 산맥을 넘은 뒤 자신의 짐의 일부를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 두고 간다. 그 후로도 이 과정이 많이 반복되지만, 특히 이곳에 유독 두고 가는 짐이 많은 건 호된 고식을 치른 뒤 겸허하게 만드는 필수 코스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스페인 가이드북도 놓고 가는 사람도 많다.

84쪽
모두가 다른 보속과 다른 간격으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하루에 서너 번씩은 등산 동료들은 마주칠 수 있다.
특히 전경이 탁 트인 산마루나 깨끗한 물의 시냇가, 무엇보다 표면적으로 일정하지만 실제는 항상 그렇지 않은 간격으로 나타나는 대피소에서 마주치곤 한다. 야간에 대피소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면 서로에 대해 좀더 알게 된다. 그러면 어느 새 연령층도 다르고 직업이나 성도 다르지만 같은 날씨, 같은 불편함, 같은 경치, 메인주까지 종주하려는 자기 중심적 충동을 공유하게 되어 서로를 동정하는 느슨한 연대감이 생기고 친근한 한 무리의 일원이 된다.

85쪽
대부분은 침묵을 사귀어 친구로 삼았다.
가만히 누워서 기묘하게도 명료하고 분명한 밤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람과 나뭇잎이 안달하면서 내쉬는 한숨과 나뭇가지의 지루한 신음,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살랑거림에 마치 전기가 나간 회복기의 환자 병동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에는 일어나 추위에 다시 진저리를 치고 손을 비비면서 말없이 우리의 사소한 일상, 배낭을 싸서 메고 모든 게 뒤엉킨 거대한 숲 속으로 모험을 떠났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유럽의 어느 숲,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어느 숲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던 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누가 와서 가라고 하면 어쩌나, 불량배가 시비를 걸면 어쩌나, 혹시 야생동물이라도 달려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모든 게 다 기우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피곤이 몰려와 금세 잠이 들었다. 독일을 여행할 때 브레멘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길이었나 한번 기찻길 옆에 텐트를 치고 잤는데, 심지어 그 길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산책길이었다. 지나가면서 우리를 쳐다보긴 했어도 다른 데로 가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밤새 지나가는 기찻소리가 10번 정도 들렸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아주 잘 잤었지.

86쪽.
나는 살다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과 얼마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게 신의 섭리라는 것을 안다.

89쪽.
군 부대에서 영화 상영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등짝을 보여 주고야 말았다.

91쪽.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바로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그래서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1년 여행 하는 내내 지금 뭐가 먹고 싶은지 wish list를 생각해 보고 또 생각했었다. 그중 상위권이 짜파게티, 곱창볶음, 잡채, 시원한 냉면이었다. 유럽을 여행할 때는 대도시를 지날 때면 아시안샵에 가서 짜파게티와 라면을 10개 사서 항상 쟁기고 다니다 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할 때 화해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음미하며 끓여먹었다. 당면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아이템 중 하나인데, 동남아를 여행할 때는 먹을 수 있어서 해결이 되었고, 냉면은 동남아가 더운 나라임에도 얼음 자체를 먹으면 먹었지 우리처럼 시원한 육수에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면이 없어서 너무 먹고 싶었던 음식이다. 방콕 카오산에 도착하자 마자 사먹은 음식이 거금 160바트-우리 돈으로 6,400원. 길거리에서 파는 태국 보통 면요리가 30바트, 1,200원하는 걸로 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를 준 비빔냉면, 물냉면이었다.

96쪽.
우리는 전날 한 것을 똑같이 되풀이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다. 똑같은 종류의 산봉우리를 넘고 똑같이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서 똑같이 끝없는 숲을 통과해야 했다.

117쪽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미터는 머나먼 길이고, 2킬로미터는 상당한 길이며, 10킬로미터는 엄청나며, 50킬로미터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당신은 마음의 격렬한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어떤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였던 윌리엄 바트럼이 표현한 대로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가 된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

199쪽.
첫날에는 등산이 끝날 무렵 자신이 조금 지저분해졌다는 것을 의식한다. 다음 날에는 지저분해졌다는 게 불쾌해진다. 그 다음 날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다음 날에는 지저분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역시 규정된 단계를 따른다. 첫날 밤에는 국수를 갈망한다. 다음 날 밤에는, 배는 고프지만 국수가 아니길 빈다. 그 다음 날 밤에는, 국수를 먹고 싶지 않지만 뭔가는 먹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 다음 날 밤에는, 전혀 식욕을 못 느끼지만 그냥 먹는다. 왜냐하면 그게 그 시간에 내가 해 오던 일이니까. 왜 그렇게 되는지 나로선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그렇다.
-집을 떠나면 모든 게 고생스럽고 일상적인 것들이 사치스러운 바람이 된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 1주일 가까이 씻지 못하고 고작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고 자는 날도 많았고, 세 모금의 물로 이를 닦았다. 웜샤워라는 것이 크나큰 사치였고, 하도 텐트를 치고 자다 보니 사방이 벽으로 되고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는 것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그래도 우리는 거의 날마다 끓여먹던 스파게티는 질리지가 않았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라면스프를 넣고 스파게티 라면만 끓여먹어도 너무 맛이 있었었다.
여행이란 굳이 일부러 힘든 여행을 선택하지 않아도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도 힘들어지는 여행을 다시 떠나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243쪽.
다음 날 오전 늦게 나는 카츠와 코놀리보다 너무 앞서 갔다는 느낌이 들어 가파른 언덕 사이에 비밀스럽고 요술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넓고, 오래된, 매혹적인 숲 속의 빈터에서 멈추었다. 숲이라면 이랬으면 좋겠다는 것들이 여기에 다 있고-키 크고 위엄있는 나무들이 햇빛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층이 줄 서서 올라가고, 두터운 이끼가 바닥에 깔린 시내도 꾸불꾸불 흘러가고, 찬 공기가 나른하게 녹색의 고요 속을 떠다녔다-나는 야영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곳임을 의심치 않았다.

377쪽.
'셔의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8달러만 내면 숙박과 저녁, 아침 식사를 제공받을 뿐 아니라 샤워시설과 세탁기, 응접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키스와 펫 셔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20년 전 키스가 배고픈 등산객을 데려와 대접하고 이 등산객이 얼마나 잘 대접받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 다소간 우연히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셔의 집'을 보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스페인 국경을 넘기 바로 전에 우연히 들르게 된 알베르게 같은 곳이었는데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좋아 계속 그곳에서 살면서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두할데 아저씨였다. 제대로 된 방에서 자고 아침식사까지 하려면 얼마간의 돈을 내야 하지만 컨테이너 같은 곳 침대에서 자거나 캠핑카에서 자면 돈을 따로 안 받고 얼마간의 기부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해서 처음으로 캠핑카 안에서 자볼 수 있었다. 우리가 버너를 이용해서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하자 식당 부엌을 이용하라고 해서 끓인 라면을 조금 덜어 드리기도 했다. 인상이 좋으신 두할데 아저씨는 불어-영어 사전을 펼쳐가며 요즘엔 한국인이 보꾸보꾸(많이많이) 온다며 왜 그런지 궁금하다...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우리와 나누었다. 그 고마움을 그집 아침식사를 사먹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한 기억을 선사하진 못한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411쪽.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 보았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나 항상 그랬다.

415쪽.
물론 아쉽다. 캐터딘까지 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비록 나는 언젠가 갈 거라고 다짐한다고 해도. 곰이나 늑대를 보지 못한 것도, 느릿느릿 소리 없이 뒷걸음치는 자이언트도룡뇽을 보지 못한 것도, 살쾡이를 쉬이 하고 쫓아내거나 방울뱀을 피해 옆걸음치지 못한 것도, 놀란 멧돼지를 맞닥뜨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면 보장만 있다면-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 칠 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 것도 배웠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자랑스럽게도 몸이 날렵하고 튼튼해졌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나는 전엔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용즘 산을 쳐다볼 때마다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도려낸 화강암 같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음미하면서 바라본다.
우린 3천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이야기를 읽기 시작할 때는 빌 브라이슨이 친구 카츠와 함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했구나 생각했는데, 읽어나가면서 결국 그들이 종주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글이란 완주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역시 글재주가 좋은 사람이 쓰는 거라는 것과 종주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사람이 몇 천 명은 될 텐데 그들이 다 책을 쓰는 건 아니니까. 그보다 더 의미가 있는 건 종주를 하지 않아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통과 나의 의견이 늘 첨예하게 갈리는데, 빌 브라이슨 식으로 보자면 나에게는 1년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통에게는 더 많은 거리를, 하루에 더 멀리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한 것이 불만족스럽고 동남아 특히 라오스를 자전거로 여행하지 못한 것이 불만인 것이다. 이는 아마도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견해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자전거를 타고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여행했고, 평생 해야 할 캠핑을 이번 여행에 다 한 것 같아 내가 대견하고 내 여행이 소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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