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101126. 금. 치약

며칠 전 치약이 떨어져 남은 게 없나 선반을 뒤졌다.
아무리 봐도 남은 게 하나밖에 없어 치약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5개짜리 치약 세트를 샀다.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얼마 전 통이랑 마트에 가서
소나무소금치약을 세트로 산 것 같은 장면이 데자뷰처럼 스쳐가는데.
다시 선반을 열고 보아도 소나무소금치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로 산 치약을 선반에 넣고 나서 보니
소나무소금치약이 무려 6개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아니,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이런 경험이 또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달릴 때 팜플로나 시내에서 순례자용 숙소를 찾을 때였다.
지도를 보니 이 쯤인 거 같은데, 기념품 가게밖에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방금 내가 지나온 곳,
내가 등을 지고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바라보고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뒷쪽에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려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내가 들으려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바로 앞에 있었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치약처럼 말이다.

요즘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고 퍽퍽했던 게 사실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고 잠을 자면서도 선잠을 자는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누구나 쉽게 내뱉는 말처럼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모든 일에 감사하자고 나를 달래기는 쉽지 않다.
카르페 디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심지어 <그만두는 힘>이라는 책의 목차까지 냉장고에 붙여놓고 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오늘 아침 옴짝달싹 할 수 없는 4호선 지하철 좁은 공간에서
아침에 주머니에 급하게 쑤셔넣고 나온
에쿠니 카오리가 쓴 '絵本を抱えて 部屋のすみに'(그림책을 품고 방 한구석에)를 뒤적거리다
내가 좋아하는 아놀드 로벨이 쓰고 그린 두꺼비와 개구리 이야기가 눈에 띄였다.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 의 <혼자 있고 싶어> 중에서
"난 기뻐. 정말 기뻐. 아침 눈을 뜨면 햇살이 비추고 있어 기분이 좋아.
내가 한 마리 개구리라는 게 정말 기뻐.
그리고 너라는 친구가 있어서."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의 < 꿈> 중에서
두꺼비가 개구리에게 하는 말.
"개구리야." 두꺼비가 말했다.
"난 니가 와 주어서 정말 기뻐."
"언제나 오잖아." 하고 개구리가 말했다.
그리고나서 둘이는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길고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 보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책장을 덮고
아놀드 로벨이 쓴 개구리와 두꺼비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놀드 로벨에 대해 조사하고 그가 쓴 책을 읽고 했던 그 시절도.
아마 6~7년 전쯤 된 것 같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아놀드 로벨의 책을 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우연히 들고 나온 책에서
좋아하는 것,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해서 기뻤다.
그래, 이렇게 단순한 게 나라는 사람인데.
좋아하면, 하고자 하면 뭔가 마구마구 일을 벌리는 게 나였는데.
단점은 싫으면, 억지로 시키면 못한다는 거지만.

삶이 아무리 퍽퍽하다 해도 어느 순간 웃음짓고 있고,
삶이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어느 순간 가슴아프고 힘들어 했던 것 같다.
그조차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더 불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걸 보면 여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하자,
기왕 해야 한다면 즐겁게, 즐기며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오늘의 생각.

댓글 2개:

  1.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냉수 한 사발에 작은 나뭇잎을 띄워 너무 급하지 않게, 한 숨 돌릴수 있게 하던 선인을의 지혜가 더 많이 필요한 지금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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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맙습니다. 바쁘게 살지 않겠다고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니 바쁘게 살지 말아야지...하는 게 저를 또 옭아매는 것 같네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 싶습니다. 조금식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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