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2일 금요일

D+258~263. 100113~18. Pulau Pinang, 페낭 섬에서 5일치 숙박비를 술값으로 날리다

nibong tebal에서 데이비드의 극진한 환대, 눈 돌아갈 것처럼 바쁜 스케줄에 살짝 부담스러워, 첨엔 이틀을 머물자 하고 갔다, 한 1주일 머물자 했다 4일만 있다가 페낭으로 가기 위해 데이비드의 집을 나섰다.

nibong tebal에서 penang 섬까지는 40km 정도 거리. butterworth에서 페리를 타고(사람 1.20RM, 자전거 1.40RM) 20분 정도 가면 페낭 섬이다.


데이비드가 일러준대로 버스 터미널 뒷길을 찾아 페리 터미널로 가 페리를 타고 페낭에 도착해 love lane(love lorong)으로 갔다. 외국인이 많이 눈에 띄는 게 관광객이 많이 오는 섬인가 보다. love lane은 페리 터미널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싼 게스트하우스가 많았다. 하지만 모두 풀이라며 방이 없다고 한다. 싼 게스트하우스는 기가 막히게 언제나 풀이다. 다들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가격은 룸 18RM, 도미트리 10RM 정도...비싼 곳은 30~50RM.

몇 군데 들러본 뒤에야, 처음 본 ping seng hotel이 그중 제일 깨끗하다는 걸 알고 거기서 묵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도 실려 있는 곳으로, 중국인 3형제가 하는 아주 낡은 호텔. 하룻밤 20RM~25RM(with bathroom). 우린 공동샤워를 이용하는 20RM하는 방. 그동안 우리가 묵은 숙소 중에 이렇게 청소도구가 많이 눈에 띄는 곳은 처음인 것 같다. 빗자루, 세재, 걸레,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가 이들의 모토인가 보다. 인터넷은 안 되지만, 깨끗한 거, 길 안쪽이라 조용하다는 거. 그런대로 괜찮아 6일이나 묵었다.

쿠알라룸푸르 치콩네 집에 있을 때 밤마다 모기에 시달려서, 모기 퇴치를 위해 젤 첨에 산 것은 모기향. 근데 독한 향 때문에 모기가 죽기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그담에 준비한 건 훈증기 모기향. 훨씬 낫다. 하지만 팡코르 섬에 있을 때 새벽즈음이면 모기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역시 가장 훌륭하고 효과가 직빵인 것은 모기스프레이인 것 같다. 페낭까지는 훈증기로 버텼고, 랑카위에 도착해서 문이 열린 도미트리에 묵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 모기스프레이 작은 걸 6RM 주고 샀다. 일명 모기 퇴치 3종세트. 워낙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뭐든 3개씩 준비한다.

다시 핑셍호텔. 밤이면 훈증기를 켜고 선풍기를 틀고 자면 모기가 접근을 못한다. 한낮은 선풍기가 있건 없건 사우나지만, 밤과 새벽이면 서늘하다 못해 춥다 해야 하나, 침낭을 찾게 된다. 그런데로 이곳 날씨에 적응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5번 정도 한국에 짐을 부쳤나...줄인다고 줄이는데도 어느새 보면 짐이 늘어나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세면 도구. 하나하나 장만하다 보니...

페낭섬은 역시 일주를 하면 70km 정도 되는 비교적 큰 섬. 애초 무인도였던 섬에 18세기경 영국인이 들어오면서 자유로운 무역이 가능한 신도시로 개척한 섬이다. 그리고 중국인과 인도인이 많다. 그 이유는 중국, 인도 무역상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했고,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하인으로 일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당시만 해도 잘나가는 부유한 중국 상인의 자제들은 유럽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고, 가정교사를 들여 자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말라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아주 오래된 차이나타운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규모는 말라카의 10배 정도? 꽤 차이나타운이 크다. 페낭섬의 유명한 동네는 조지타운.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당시 영국왕인 조지에게 페낭섬을 바친 것이다. 빅토리아 시계탑도 있는데, 역시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치는 시계. 통에게 들은 풍월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영국이 뜨면 그건 돈이 된다는 소리. 그래, 전세계 장삿꾼이 몰려들었다 한다. 지금으로 치면 맥도널드, 스타벅스, 세븐일레븐 정도 될까? 국가 개념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이 들어서면 장사 된다는 소리?

유럽과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면서 중국인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들의 억척성, 근면성, 복을 기원하는 순수성? 베트남도 목욕탕 의자 하나만 가지고도 쌀국수도 팔고 차도 팔고 장사도 하지만, 중국인 그들도 어떤 환경 가리지 않고 장사를 하는 것 같다. 세계 어디를 가도 싼 물건을 파는 중국인가게는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로 치면 1000원샵 같은 거.
핑셍 호텔 우리가 묵었던 10호실. 딱 들어갔는데, 장농 문이 다 깨어져 있다. 그래도 당당하게 손님을 받는다. 그래서 20RM이라는 금액을 유지할 수 있나? sabak bernam에서 묵었던 중국인 호텔도 그렇고, Kuala selangor에서 묵었던 중국인 호텔도 50년은 족히 된 것 같은 낡은 호텔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싼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유지보수를 안 하는 거. 리노베이션을 안 하는 거.

또 중국인이 하는 가게를 가면 문앞에 恭喜發財(gong xi pa cai,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라고 쓰여진 부적을 붙여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건 우리나라 중국집도 마찬가지이다. 방문에도 붙여놓고, 등도 많이 달아놓고, 절에 가면 향을 사서 여기저기 꽂으면서 비는 중국인을 흔히 볼 수 있다. 부자 되길 바라는 마음,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늘 비는 것 같다. 그렇게 부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니 잘살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그들이 게으르냐 하면 것도 아니다. 아주 부지런하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호텔을 경영하는 삼형제 중에 한 명. 매일같이 열심히 청소하시던.
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부적. 한달에 한 번 정도 태운다고 한다.

중국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말로 'selamat tahun baru cina!'
칼스버그에서 엄청 마케팅을 하고 있다.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대목 중 대목인가 보다. 엄청나게 카드랑 부적을 사가고 있다.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도 탁월하다 싶다. 말레이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아주 소박하다. 동네 골목길 어귀 작은 가게에서 nasi lemak, nasi campur, mee goreng 정도를 판다. 하지만 중국인은 대륙인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가게 하나를 해도 엄청 크다. 돈이 돈을 번다고 가게가 크고 시설도 좋고, 종류도 다양해서 선택의 폭도 넓다. 말라카에 있을 때 차이나타운의 물건은 새로운 것도 많고, 아이디어상품도 많이 눈길을 끌었는데, 말레이 사람들이 하는 기념품 가게에 가보니 죄다 똑같은 것만 팔고 있다. 어느것하나 새롭다 호기심이 간다 싶은 게 사실 별로 없었다. 장사를 하려면 약간 억척스러움도 필요하고, 감각도 필요할 것 같은데 말레이사람들은 그냥 적당히 적당히 오늘하루 충분하면 그만이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어떨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암튼 내게는 핑셍호텔의 다 부서진 장농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단적으로 중국인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자자자,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다시 관광모드로...gogo! 페낭섬을 둘러보자고요~
먼저 george town. 오래된 중국인 가게가 많다.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한 달이 넘어도 모자랄 것 같다.

잠깐 페낭 조지 타운 구경




숙소 근처 절에서 사자춤 출 때 이용하는 탈을 쓰고 노는 중국 아이들을 만났다.
한쪽에서는 늦은 밤 높은 곳에서 사자춤 연습을 한다. 중국문화, 중국전통의 미래는 밝다고 해야 하나.


다들 페낭에 간다고 했더니 음식이 맛있다 한다. 중국인이 많아서 그럴까?
6일 동안 있으면서 3일 이상 vegeterian restoran에 갔다.

음식도 담백하고 맛있고 값도 싸고 해서 몇 번이나 찾아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내가 자전거를 열심히 잘 탄 날 볼 수 있는 통의 행복한 표정.

sapo mee, 라면 같이 쫄깃하고 국물도 시원하고 해장으로 그만이다.


wolfram, this food is vegeterian food. very delicious!
in malaysia, you can find a lot of vegeterian restoran on the street.

그다음은 경제적이고 맛있는 면 3종 세트.

밤이면 mee(노란색 밀가루면), bihun(얇은 쌀국수), koay teow(칼국수처럼 넓적한 쌀국수) 3종 세트를 대자 2.00RM, 중자 1.50RM, 소자 1.20RM에 판다. 양도 엄청 많고, 고추 피클, 칠리를 끼얹어 먹으면 맛있다.

60년째 이어오는 국수집도 있고,

1RM에 직접 과일을 갈아서 쥬스를 만들어주는 포장마차도 있고 good이다.


그럼 목마름은 어떻게 할까? 슬슬 말레이시아 여행에 익숙해지고, 목도 마르고 마시다 보니 5일치 숙박비를 맥주값으로 날렸다! 우리가 묵던 호텔 바로 옆에 거의 오후 3시까지 닫혀 있는 ken reggae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는데, kelvin이라는 귀엽게 생긴 중국인 아저씨가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chang beer가 5RM이라며 나중에 와서 마시란다. 매일 ken을 기웃거리면서 kelvin 아저씨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었다.

캔 하나둘 마시다 보니 둘이서 8개를 마셨다. 기분좋게 마시고 면 3종 세트 먹고 들어가 잤다.

다음 다음날 ken에서 프랑스형제 줄리앙과 클레몽, 일본 여인 아키코와 함께 드링크, 드링크, 12캔을 마셨다. 20캔*5RM=100RM, 우리가 하룻밤 자는 데 20RM이니까 무려 5일치 숙박비를 술값으로 날려버렸네..ㅋㅋ. 술값이 비싼 건지, 숙박비가 싼 건지 알 수 없는 말레이. ㅋㅋ.

일본여인 아키코도 그렇고 줄리앙과 클레몽도 태국을 여행하고 태국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조지타운에 온 건데, 줄리앙은 인터넷 카페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고, 아키코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바람에 랑카위로 가는 아침배(8:30)를 못 타 10일째 페낭에 머물고 있다 했다. 대부분 장기여행자들이 태국 섬에서 머물다 비자를 갱신하려 조지타운으로 온다고 한다. 다시 3개월짜리 비자를 받아 머물다 다시 비자연장하러 오고. ko pangan이라는 섬은 drug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랑카위에 머물고 있는데, 같은 게스트하우스 게스트 중 한 영국여인이 입은 원피스가 너무 이뻐서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 코 판강에서 샀단다. drug은 관심없지만, 원피스가 너무 이뻐 나 코판강 가야 하나~~~

핑셍 호텔에서 한 한국인 여행자도 만났다. 라오스를 25일 정도 여행하고 말레이-싱가폴을 여행하고 치앙마이로 간다고 하는데, 하루 같이 다니면서 penang hill도 구경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모처럼 한국인을 만나 함께 다니니 반갑고 좋더라.

페낭섬 중간에 있는 페낭 힐은 821m 정도. 스트레이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왕복 4rm. 정상에 올라가면 페낭 시내를 둘러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정말 시원하다. 고작 800m 올라왔는데, 이렇게나 시원하다니. 네팔이나 그런 곳은 얼마나 시원하다 못해 춥겠지?


여행 전 섬유회사에서 일했는데, 베트남 호치민에서 4년 정도 파견근무하고,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중이란다. 라오스 여행할 때 같이 다니던 일행이 흥정의 달인이었는데, 무조건 가격을 물어본 뒤 'wow, expensive!'라고 하며 가격을 깎는다고 한다. 그리고 깎은 돈으로 beer lao 사서 마시기.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beer lao가 가장 맛있는 맥주라고 한다. 나도 라오스 위앙짠, 루랑푸라방 해서 한 5일 정도 여행했었나, beer lao를 마시긴 했는데, 그때 워낙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 맥주를 마시는 바람에 기억에 남진 않는다. 다만 라오스 물이 깨끗해서 비어라오가 맛있다 하는데, 통이랑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볼프람이랑 한 병에 28센트, 20병 한 짝에 5유로 좀 넘게 하는 맥주가 맛있었던 것 같다. 암튼 그는 이틀 머물고 다음날 밤버스로 싱가폴로 떠났다.

동양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kek lok si(極樂寺)에도 다녀왔다.

페낭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걸 몰라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코스를 이틀에 걸쳐 다녀왔다. 엄청나게 규모가 큰 절로 불상도 크고, 파고다도 크고 지금도 짓고 있다.



엄청 많은 중국인, 외국인들이 기왓장에 이름을 쓰며 복을 기원하며 100RM 이상 낸다.

그 절을 다 지으려면 아직도 많은 기왓장이 필요할 텐데. 대부분 리프트(왕복 4RM)을 타고 올라가는데, 우리는 탑을 보는 데 2RM씩 썼기 때문에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뙤약볕에 걷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올라가서 보니 페낭시내도 볼만하고, 불상 주변 작은 가든에서 쉬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내려올 때는 다시 걸어서.

돌아보니 페낭, 꽤 볼거리도 많고 이야기거리도 많은 섬이었네.

welcome to my paradise
http://www.youtube.com/watch?v=MvOJoXKiNGc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D+254~257. 100109~12. 그 남자 David와 함께 한 정신없는 4일.

말레이시아는 무슬림 국가여서 어디서나 모스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침 5시 45분, 1시 15분, 4시 15분, 7시 15분, 그리고 저녁에 한번 더 예배를 알리는 '아잔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의문이다. 7세기에 아랍에서 전파된 이슬람이 현대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에게는 5가지 의무가 있다. 매일 5번 예배하기, 기부하기, 평생에 한번 메카 순례하기, 라마단, 남의 남자, 여자 넘보지 않기... 하지만 열대의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히잡쓰고, 긴 치마, 긴 원피스를 입고 있는 말레이 여인들을 보면 답답하다. 물론 그들의 문화인 것은 알고, 인정하지만 바다에 들어갈 때조차 그녀들은 체조선주 유니폼 같은 타이즈를 입고 들어간다. 적어도 히잡-여기 말로는 'tudung'만이라도 벗어버리면 안 될까?

100109. 금요일.
여행을 하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 만난다. 그중에는 다시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리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들의 직업, 생각, 문화, 삶의 태도, 삶의 철학...

Nibong Tebal에서 만난 인도계 말레이시아 인 David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카우치서핑이나 웜샤워를 이용해 호스트를 컨택하곤 했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반대로 호스트가 게스트를 컨택하는 케이스. 카우치서핑으로 페낭의 호스트를 찾느라 카우치서핑에 들어갔었는데, 데이비드라는 남자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 자기 집에 오라고, 언제든 환영이라고. 집 위치를 보니 페낭 가는 길이라 들러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10년 1월 9일 아침 Kuala Terong을 떠나 40km쯤 갔을까,

12시쯤 길에서 한 남자가 'korean! korean!' 하며 우리를 불러세운다. 우리가 한국인처럼 보이나 보다 싶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였다. 무려 20km나 마중을 나와준 것이다. 지금껏 카우치서핑을 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론 우리의 친구 볼프람도 공항에 마중도 나와주고, 배웅도 해주었지만.

56세. 자녀가 무려 8명. 딸이 4, 아들이 4. 그중 둘은 쌍둥이. 큰 아들이 32. 막내쌍둥이가 12살. 2009년 8~10월 3개월동안 유럽자전거여행 10개국. 신문에도 나고 그랬나 보다. 그전에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자전거여행도 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에 맞춰 베이징으로 자전거여행도 떠났나 보다. 이틀을 예정하고 갔는데, 4일이나 묵게 되었다. 첫날 둘째날 너무 빡세게 데리고 다니셔서 입안이 다 헐정도였다.

첫날 만나자 마자 데려간 곳은
나룻배에 자전거를 싣고 작은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는 현지인만 아는 힌두사원.

일년에 딱 한번 있는 축제로, 밥도 공짜로 주고, 운좋으면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도 볼 수 있단다. 팜오일 트리 플랜테이션 속에 있어 인도인들이 많았다. 가끔 플랜테이션 농장을 지날 때 힌두 사원을 만나곤 했는데, 인도인이 많이 일을 해서 그렇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나나잎에 밥 놓고, 치킨 카레 놓고, 야채 샐러드 놓고 처음 손으로 음식을 먹어보았다.


염소 카레도 한점 주었는데, 야들야들한 게 맛있었다. 다 먹고 나서 둘러보니 염소 다리 4개가 보인다. 저 염소였구나...싶으니 짠하다..

그리고 나서 10km 정도 달려 찾아간 코코넛와인 그들말로 'toddy' 술집.

우리로 치면 밀주 파는 곳이라 해야 하나. 무슬림 국가가 술을 파는 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곳도 역시 허가를 받아 술을 파는 곳이다. 천지에 널린 야자수로 술을 만들 수 있다니 이런 술맛나는 세상! 꽃에서 하루에 아침 9시, 오후 3시 두 번 액기스를 따 하루 정도 묵히면 발효를 해서 술이 된다고 한다, 천연알콜. 먹으면 계속 트름이 나오는 게, 맛은 막걸리랑 비슷하다. 한 주전자에 8RM. 외국인 게스트가 오면 꼭 데리고 온다고 한다. 코코넛꽃을 잘라 주전자를 덮어 액기스를 받아낸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술자만 할 수 있다고. 마침 3시여서 운좋게 따는 걸 볼 수 있었다.

따자마자 마시는 toddys는 좀 단맛이 강하다. 좀 지나니 중국사람, 인도사람 친구들이 찾아온다. 말레이사람들은 잘 같이 안 어울리고 인도사람, 중국사람은 같이 어울린다 한다.

그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사우나. 데이비드이 '소나'라고 해서 뭔가 했는데, 사우나다. 빌딩 속에 있는 사우나가 아니라, 말레이 시골 kampung 작은 길을 따라 가다 보니 만난, 뒤쪽은 널찍한 논이자리하고, 야자수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는 사우나.

역시 중국인이 하고 있다. 샤워시설은 따로 없고 화장실에서 물만 끼얹고 나온다. 그래도 야자열매를 연료로 쓰고 고구마도 구워주고 생강차도 마실 수 있고 꽤나 뜨겁다.

한참 땀을 뺀 뒤 찬물을 끼얹으니 시원하고 좋다. 열대에서 사우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가격은 한사람당 6RM.

사우나를 마치고 10km 정도 더 달려 데이비드의 집에 도착했다. 집 바로 뒷편이 팜오일트리 플랜테이션. 비가 많이 오면 보아뱀 같은 큰 뱀도 나온다고 한다. 야생원숭이도 있고. 꽤나 큰집이다.

하긴 10명의 대식구가 살아야했으니. 지금은 다 떠나고 부인이랑 쌍둥이도 쿠알라룸푸르 큰아들집에 가서 생활하느라 그 넓은집에 혼자 산다.

더블베드가 두 개인 게스트룸도 따로 있고. 곳곳에 자전거여행자 사진이걸려 있다. 지금까지 100명이나 넘게 자전거여행자, 배낭여행자들이 찾아왔다고한다. 근데 대부분은 데이비드가 컨택을 하는 것 같다. 재밌게도 치콩네서 만난 폴란드 여인 마그다도 여기서 3일 묵었다 하고, 마카오 청년 화우소도 5일 여기서 머물렀다 한다. 세상이 좁은 건지, 데이비드가 인터내셔널한 건지 우리가 발이 넓은건지 모르겠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침 그날이 데이비드 친구들 모임이 있는 날이라며 우리를 모임장소로 데려갔다. 5명이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데 한 사람은 술을 사고, 다른 사람은 음식값을 나눠서 낸다고 한다. 덕분에 중국음식도 배불리 먹고, 조니워커 블랙라벨도 마시고, 코코넛와인도 마시고 퍼질러졌던 날이다.
100110. 토요일.
오늘도 아침부터 바쁘다. 데이비드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가지 스케줄이 잡혀 있는 것 같다.

아침 9시에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으러 중국인이 하는 레스토랑에 갔다. 딤섬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란다. 아침은 대부분 가볍게 바깥에서 사먹는 것 같다. 이날은 특히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가족단위가 참 많다. 중국인은 'eating culture', 말레이시아는 'family culture', india ?. 아마도 한국은 'drinking culture'. 그래도 좋아보이는 점은 중국, 말레이시아 대가족 단위로 움직인다는 거다. 적어도 3대 5명~10명 정도 대가족 단위로 음식도 먹으러 가고 놀러도 다니는 것 같다.

아침을 먹고 15km 정도 떨어진 fishing village(어촌)에 갔다. 가는 10km 동안 참 흥미로운 풍경이 많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시골 마을을 'kampung'이라고 한다. 캄풍 사이로 난 작은 야자수 길을 따라가다 보니 구석구석 정겨운 풍경이 많다.
한 어린여인이 팜오일 트리 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있다. 한 개에 0.50RM, 하루에 100개 정도 만든다고 한다. 예전에는 전통가옥의 지붕에 많이 쓰였는데, 지금은 양계장이나 축사 지붕에 쓰인다고 한다. 어쨌든 아직도 소용가치가 있다니 고무적이다.

조금 가다 보니 한 아저씨가 천연 팜오일 트리 줄기를 자르고 벗겨서 담배잎을 만들고 있다. 통 나중에 써보겠다고 하나를 얻어왔다.

좀 더 가다 보니 이른아침부터 사탕수수를 베는 여인들이 보인다. 데이비드가 뭐라뭐라 해 사탕수수 하나를 얻어왔다.

좀더 가다 보니 작은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말레이 가족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꽤나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좀더 가다 보니 파인애플 농장이 보인다. 난 파인애플도 바나나처럼 나무에 매달려 자라는 줄 알았더니, 알로에 같은 나무에서 자란다. 예전에 팜오일(팜유) 트리 플랜테이션인 곳이거나, 파인애플과 함께 팜오일트리를 심어 팜오일트리가 작을 때는 파인애플을 재배하고, 5년 정도 지나 팜오일트리가 자라 파인애플을 가리게 되면 팜오일트리 플랜테이션으로 바뀐다 한다. 꽤 효과적인 방법 같다.

좀더 가다 보니 작은 저수지가 많이 보인다. fishing farm, 양식장이다. 운좋게 고기를 건져내는 남자들을 보았다. 지금은 이런 일을 미얀마나 방글라데시 남자들이 많이 한다고 한다. 작은 양식장에 물고기가 엄청 많다. 대부분 중국인이 경영하는 양식장인데, 정부땅을 싸게 빌려 양식장을 한다고 한다. 대부분 자본은 중국인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양식장과 세트로 제비집공장(?)도 함께 경영한다고 한다. 아주 큰 건물인데, 새소리가 들리는 건물이 있다. 말로만 듣던 '제비집'을 여기서 만든다고한다. 건물에 새소리 CD를 들어 제비를 안으로 들어오게 유인하고 제비가 집을 만들면 그 집을 가져다 음식을 만든다 한다. 과연 책상 다리 빼고는 모든 걸 먹는다는 중국인 답다. 보통 양식장 3개, 제비집 1개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불과 10km 남짓 거리가 유럽 몇 백km를 넘게 달린 것만큼 흥미롭다.

그리고 도착한 어촌. 말레이말로 강은 'sungai'라고 한다. 강을 따라 어촌이 형성되었고, 바다로 흘러간다.

꼬막, 새우, 다양한 물고기가 잡힌다. 여기 사람들도 꼬막을 참 좋아한다. 미고렝이라고 하는 볶음면에도 생꼬막을 넣어 볶아 주는데 맛있다. 새우가 바다에서만 나는 줄 알았더니 강에서도 엄청 큰 새우가 잡힌다. 흙탕물처럼 보이는 강에 그물을 던져놓으면 새우가 잡힌다.

경매하는 모습도 보고, 데이비드가 운좋게 큰 생선 한마리를 얻어 잘 가는 중국음식점에 가 요리비용을 내고 생선요리를 해먹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미 뜨거워진 한낮. 돌아가는 길 너무나 힘들어 고만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 얼른 샤워를 하고 러닝 클럽 모임에 가야 한단다. 매주 토요일 동호회 사람들이 모여 산악러닝을 하는 날이란다. 입가가 피곤해서 헐었다. 좋아, 가보자. 산에 가면 공기가 좋을 테니 원기회복이 되지 않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나 있는 산길을 가는 게 아니라, 길이 아닌 곳을 종이로 길을 만들면서 가고 있다.

시간이 오후 4시여서 천천히 경치를 즐기면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경치도 끝내주고, 군데군데 고무액기스를 받고 있는 나무도 있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데. 통은 다람쥐처럼 사람들을 잘 따라간다. 역시 통은 몸을 써야 하고, 나는 머리를 써야 하나...ㅋㅋ


고무나무 사진 몇 컷 찍으면서 가다보니 일행은 이미 저 앞의 산중턱을 오르고 있다. 데이비드 버벅대는 나를 보더니 통보고 먼저 가란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가서 근처나 둘러보잔다. that's good idea! 산이 꼭 올라야 맛인가, 그냥 즐기면 되지. 데이비드 왈, 산행을 포기한 건 내가 처음이란다. 통은 다람쥐처럼 일행을 따라 산을 넘고 나는 뿌려놓은 종이를 찾아 다시 돌아나왔다. 다리부분이 이상해서 신발을 벗고 보니 거머리같은 '리치(?)'라는 놈이 내 발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고 있다. 아프지는 않던데. 불과 200m나 갔을까 거머리에 물리다니. 이론이론. 천천히 가면 리치가 달라붙을 수 있다고 한다. 기가 막혀. 배가 부르면 저절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한동안 피가 계속 흐른다. 옴마, 참 별일 다 겪네.

그다음 코스는 워터폴. 폭포로 수영을 하러 가잖다. 관광객은 없는 현지인만이 찾아오는 폭포.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가니 폭포 아래에서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곳에 입장료 받고, 샤워시설 돈 받고 음식값도 바가지 씌우고 난리부르스가 났을 텐데, 여기는 입장료도 없고, 그냥 가서 놀다가 나오면 끝이다. 이런 곳이 많아서 일까, 여기 사람들 비즈니스엔 영 젬병이어서 그럴까. 물이 너무 차서 폭포 아래로는 가지도 못했다. 피곤은 하지만 시원하다.

그다음 우리에게 남은 시간 1시간. 얼른 샤워를 하고 뒷풀이 장소로 가야 한단다. 낮에 2시간 정도 산행을 하고 난 뒤에 뒷풀이를 한다고. 역시 중국음식점에서. 어디서 구했는지 버드와이저 24팩짜리를 사다놓고 술을 마신다. 덕분에 우리도 실컷 술도 마시고 맛난 음식도 먹고. 흥미로운 건, 오늘 장소도 구하고 돈도 걷고, 술도 준비한 사람을 일으켜 세운 뒤 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참 좋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사람을 위한 예의.

데이비드, 2차를 가잔다.
그럼 여기가 1차 무슬림 국가에서 뭐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남? 함께 산행을 했던 인도 친구가 어제 그 음식점에서 가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오라고 난리라고. 9시쯤 그리로 자리를 옮겨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니워커 블랙라벨을 마시며 흥겨운 시간. 통 분위기에 취해 노래를 불러보라는 소리에 노래를 부른다. 인도 남자도 답가를 부르고. 세계 어디나 '음주가무'는 기본코스이자, 필수코스. 오늘 하루도 정말 길구나.

100111. 일요일. 3일째. 이틀을 너무나 무리한 바람에 3일째는 나가서 밥만 사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보내다 저녁에 잠깐 자전거 타고 동네를 둘러보았다.


100112. 월요일. 4일째. 쿠알라룸푸르 한 지역방송에서 데이비드를 인터뷰하러 온단다. 우리더러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함께 가잔다. 졸지에 말레이시아 방송에 나가게 생겼네. 우리 패니어까지 달고 가란다. 그림을 위해. 둘째날 둘러보았던 캄풍 코스를 똑같이 재현했다. 데이비드, 역시 방송을 아는 사람.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설명한다. 우리는 초보 티가 팍팍. 이미 아는 건 반응이 없고, 모르고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반응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정도까지 어촌을 둘러본 뒤, 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언제 방송될지는 모르겠다.



꽤나 괜찮은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5명이 한 팀으로 PD, AD, 카메라맨, 크리에이터, 보조 이렇게 구성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톡톡 튀는 젊은이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해서 소개한다고 한다. 데이비드는 젊은사람은 아니지만,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했다는 것이 말레이 젊은이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뷰를 왔다고 한다. 스태프들이 준비를 해놓으면 PD가 와서 인터뷰를 시작한다. 언젠가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한국에 사는 말레이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등등을 소개하러. 예전 시사통 만들 때가 생각난다. 사진 기자 한 명이랑 취재하러 나가서 넉살좋게 이야기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한번 취재 나가면 거의 하루가 다 걸리고 심지어 3번이나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힘은 들었어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데이비드에게 배운 점은, 인생에 기회가 오길 마냥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유럽여행을 갈 때도 동호회, 아는 사람들에게 스폰을 받아서 여행을 갔단다. 이번 인터뷰에도 남미자전거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스폰서를 찾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럽에 가서도 대사관에 매일을 보내 대사관 사람들이나 대사관에서 소개 받은 사람을 만나 신세를 지곤 했다고 한다. 우리는 전혀 생각도 못한 일. 그저 대사관에 연락해서 쉥겐조약에 대해서 물어보기만 했는데. 만약 우리가 대사관에 연락해서 잘곳을 찾는다고 하면 잘곳을 소개해주었을까? 아님 환대를 해주었을까? 내 생각에 한국 대사관은 아닐 것 같다.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닌데...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데이비드의 집을 찾는 이유도, 게스트가 컨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적극적으로 게스트를 찾아 컨택을 해서 집에 오게 하고 나름 성심성의껏 말레이시아의 전통 문화를 소개한다. 인도 결혼식, 중국인 결혼식 등등.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성심성의껏 외국친구들을 호스트해야지 마음먹고는 있었지만, 과연 누가 우리를 컨택할 것인가 의문을 가졌다. 우리를 호스트해준 친구들 중 과연 몇 명이나 한국을 방문할 것인가, 볼프람은 꼭 온다고 했지만. 데이비드를 보면서 우리도 나름 한국 전통과 관련된 코스를 만들어놔야겠구나 싶었다.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에 외국 친구들을 데려가면 서로에게 좋으려나? 그런데 좀 부담스럽게 느껴진 부분은 지갑에 체코 지폐랑 다른 나라 지폐, 여행에서 만난 대사관 사람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뭐 자기 PR 시대니, 내가 뭐라 할바는 아니지만, 좀 부담스러웠다. 암튼 인생은 마냥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드는 사람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