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53. 100108. 사람냄새 폴폴나는 말레이시아 시골

새벽 3시부터 번개가 치더니 아침 7시 우르르쾅쾅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마구 퍼붓는 바람에
8시에 출발하지 못하고 9시 넘어 출발. 호텔 주인장 할머니는 주무셔서 손주들과 인사를 한 뒤,

10시 배를 타고 팡코르 섬을 빠져나왔다.

첨 섬에 들어갈 때 Lumut에서 먹었던 밥집을 찾아가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지만, 갈 길이 머니 고고~. 오늘 목표 거리 70km. 출발이 늦었으니 서둘러 달려야 한다.

일주일을 쉬어서 그런지 몸이 영 따라주지 않는다. 금방 지치고, 졸립고, 덥고 힘든 날이었다. 60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 지도에는 A103으로 나와 있는데, 실제 도로는 A101이다. 이렇게 되면 지도를 믿기 힘든데, 큰 지명을 보고 달려야겠다.말레이시아 도로는 자전거로 달리기에 힘들지는 않지만, 도로에 이구아나, 개 들이 많이 깔려 죽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것도 아주 큰 개, 큰 이구아나가.

몇 개의 강, 몇 개의 다리를 건너고, 넓은 팜오일 트리 플랜테이션을 지나고,

몇 개의 모스크를 지나고, 자전거여행자도 만나고, 2시 30분쯤 Patai Remis에 도착했다.

1km 넘게 가게가 늘어서 있는 걸 보니 비교적 큰 도시인 것 같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 가만히 있어도 더운 시간. 지나다 호텔 하나를 발견하고 통을 뒤따라가 이야기를 해주려 하는데, 통 계속 달리기만 한다. 겨우 사거리에서 통을 세웠으나 통은 내일 일정이 있으니 좀더 갔으면 좋겠다 해서 아이스커피 한잔씩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4시쯤 되니 햇빛이 덜 뜨겁고 달릴 만하다.

5시30분쯤 Kulala Terong 3거리에 도착해서 지도를 보고 있는데, 시골 가게에서 한 젊은총각이 나와 도와주겠단다. 해서 우린 지금 Terong으로 간다 했더니 여기가 Terong이라고. 힉. 우리는 호텔을 찾고 있다 하니 Terong에는 호텔이 없단다. 22km 더 가 Taiping이란 도시에나 호텔이 있을 거란다. 아님 이 동네 chalet이 있는데 80RM(32,000원) 정도 한단다. 우린 돈이 없다, 싼 호텔을 찾는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 싶어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그럼 여기서 자고 가라는 거다!

무슨 정당 모임 장소로 쓰이는 공간인 것 같은데 창문이 깨져 있고 먼지 자욱한 테이블이 두 개 있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국가여서 옷차림도 조심해야하고, 낯선이를 잘 들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닌게벼. 할아버지는 우리로 치면 한나라당 괴산군 송면리 지부장 정도 되시는 분 같다. 사람들 명단을 들여다 보시며 연신 뭔가 체크하신다. 그리고 아랍국가에서 자려면 여권을 체크해야 한다면서 우리 여권을 보자신다. 하마터면 열대우림에서 잘 뻔했는데 그깟 여권이 대순가.

우리가 찬밥더운밥 가릴 때인가, 고맙습니다 넙죽 인사를 드렸다. 샤워는 화장실에서 하라고 하시는데, 개미가 버글버글해서 난 샤워는 안 하고 수건에 물 적셔서 몸만 닦았다. 어쨌든 테이블을 닦고 할아버지가 가져다 주신 베개, 이불을 깔아 세팅을 하고, 거기에 우리 침낭을 깔고, 선풍기를 틀고 모기향을 세 방향에 피우고 나니 꽤 그럴듯하다. 깨진 창문으로 모기가 들어올 테니 일찍 점등하고 자야 쓰겄다.

잠자리를 확보했으니 그담 민생고를 해결할 차례. 마침 음식점이어서 점심도 못 먹었는데, 미고렝(볶음면) 2개랑 아이스밀크티를 시켰다. 음식은 곰방 나왔는데, 아이스밀크티가 아닌 핫밀크티라...그게 아직도 주문이 제대로 안 되니...핫밀크티는 손도 못대고...뜨거워서...미고렝은 맛있게 먹었는데, 양이 너무 작아 카레국수 하나, 쌀국수 하나씩 더 시키고, 팥빙수 같은 거 하나씩 더 시켜 먹었더니 들어갈 자리가 없다. 두 명이서 네 명 분을 시켜 먹은 셈인데, 더 놀랄 노자는 가격을 물으니 10RM!!!! 고작 4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면 4개, 차 2잔, 팥빙수 2개라니 상상이 가나? 살다 살다 여행하다 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테이블 위에서 잔다, 상상은 해보았지만 사실 실제로 해보지는 않았는데.. 이런 환타스틱한 경험, 싸고 맛난 음식, 이런 걸 보면 말레이시아 자전거여행 할만하다 싶다. 유럽에서 자전거여행할 때는 못 느꼈던 훈훈한 인심까지. 독일을 여행할 때, 한 잘사는 집-자동차가 네 대, 보트에, 말까지 몇 마리 키우는, 으리으리 삐까번쩍한 집에 한 귀퉁이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말 때문에 위험하다며 3km 떨어진 캠핑장에 가라고, 쉽게 말하면 문전박대를 당한 적이 있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진 사람들은 더 가지려고 하고, 가진 것을 지키려고 꽁꽁 자기만의 울타리를 친다. 이신전심이라고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 심정도 잘 헤아리지 않나 싶다. 어쨌든 유럽에서는 느끼지 못한, 인정이 넘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 시내에 저녁 먹으러 가셨다가 오렌지 음료랑 이온음료도 하나씩 사다가 주셨다. 다음날 아침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가서 먹을 걸 사올 테니 기다리라 하신다. 일찍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떠나왔지만,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두 분이다.

주행기록

도시 : Puala Pangkor -> Kuala Terong

달린 거리 : 78.87km

달린 시간 : 4시간 18분 5초

평균 속도 : 18.3km

최고 속도 : 33.5km

총 거리 : 362.9km(말레이시아만)

쓴 돈

1. 아침 10RM

LUMUT Nasi Campur(밥과 원하는 반찬을 고르고 돈을 내는 것)

밥(1)+생선(1)+오징어볶음(1)+나물볶음(0.50)=3.50*2=7.00

Kopi Ais(아이스 커피) 1.50*2=3.00

2. 오렌지쥬스(1.00), 잠부(1.00) = 2RM

3. Kopi Ais 1.20*2=2.40RM

4. 점심 겸 저녁 Kuala Terong : 아래것 다 합쳐서 10RM

Meehon Goreng(볶음면)*2

Kari Keu Teow(카레면) 1

Meehon sup 1(치킨 쌀국수 같은 거) 1

Teh tarik(밀크티) 1

ABC(팥빙수 같은 거)*2

5. 뱃삯 : 들어갈 때 왕복으로 10RM, 자전거 역시 들어갈 때 한 대당 2RM

6. 물 : 1.5L 1병 1.30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