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8일 토요일

아키코가 갔다

이틀 밤 자고 오늘 하루 종일 수다 떨다 돌아갔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11개월 만에 일본행 비행기를 탄다.
재미없으면 일주일만 있다 가야지 하고 온 한국인데,
생각보다 너무나 재미있어 두 달 가까이 머물렀다 한다.

함께 있는 내내 일본에 돌아가기 싫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아키코를 태워 보내며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올 1월초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만나 며칠을 함께 보냈고,
3월 태국 방콕에서 다시 만나 며칠을 함께 보냈다.
5월에 방콕에 들렀을 때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인도인지, 라오스인지 갔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일본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에 들렀다며 7월말쯤 메일로 연락을 해왔다.
마침 우리가 8월 초에 이사하니 이사한 뒤에는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답변을 했고,
짐 정리도 되지 않은 이사한 바로 다음날 놀러와 오랜만에 술 한잔 할 수 있었다.

아키코도 연락을 잘 안하는 스탈이고, 나 역시도 그렇고,
일본으로 돌아갔을까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9월 10일에는 일본에 돌아가야 한다며 8월 말쯤 놀러가도 되냐고 전화가 왔다.
마침 그때 급하게 넘겨야 할 일이 있어 며칠 뒤가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전날 올 수 없게 되었다고 문자가 왔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갔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월요일에 다시 아직 한국이라며 전화가 와서 다행이라며 수요일에 보자했다.

수요일에 놀러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고,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미적미적거리다 뭐할까 술을 마시기는 뭐하고
아침부터 수도관 공사를 하는 바람에 하루종일 소음에 시달리다
통네 학교 도서관이나 가보자 하고 4시쯤 함께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 저녁도 얻어먹고 도서관에서
아키코는 아키코가 흥미로운 책을 읽고, 나는 나대로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9시. 이젠 공사가 끝났겠지 하고 돌아왔더니 아직도 공사중.
가방을 놓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다이소에 가서 잡화를 구경하다
너무 피곤해 돌아오니 공사는 일단 정리가 된 상태.

아키코가 오기 전날도 학교 선생님이 찾아와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신 상태였고,
전날도 아키고와 2시 넘어까지 술을 마셔 너무 피곤해 오늘은 일찍 자자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키코는 잘 시간을 놓쳐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아침 8시 30분쯤 통 출근하는 걸 보고 다시 잠이 들어 12시 30분쯤 일어났는데,
아키코가 벌써 일어나 있었다. 늘 오후 2~3시까지 잔다고 했는데 일찍 일어났네.

서둘러 밥을 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고
각자 책을 보다가, 가족 이야기, 한국 미친 영어 교육 이야기, 일본 사교육 이야기,
아키코 여행 이야기-역시 여행하기엔 태국이 최고다 등등- 한국 술 문화,
한국 남자와 일본 남자와의 차이점,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
선물을 뭘로 사갈까.. 등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저녁 8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짜파게티를 끓여먹고 싶었는데, 1개밖에 없어서 진라면 2개를 끓여
김치와 먹으면서 한국사람들은 라면에 밥 말아 먹는다니
그럼 한국식으로 밥말아먹겠다 해서
밥말아주고. 그렇게 2박 3일을 있다 갔다.

아키코가 돌아가고 나니,
아키코가 한국에 있는 동안 시내에서도 만날걸,
내가 먼저 연락도 할걸,
맛있는 것도 좀더 해줄걸
-하다못해 짜파게티라도 한 개 더 사다 끓여줄걸-후회가 된다.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잘 지내겠지 생각하며 미루다
막상 아키코가 떠나가니 이제 언제 다시 만날까 아쉬움이 밀려온다.
아마 일본보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만나기가 더 쉬울 거다 이야기는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한국의 겨울을 보고 싶다고, 아마도 겨울쯤 다시 올 것 같다며 갔다.
무사히 잘 돌아가길 바라고, 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길 바랄 뿐.
카메라도 고장나서 사진도 찍지 못했는데...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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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와 영화라도 한편 볼까 곰플레이어에 들어가 본 무료영화 <빨간 구두>.

영화에 대해 아는 건 전무했지만,
페넬로페 크루즈라는 이름 일곱자와 평점 8.7을 보고 밀양 대신 선택한 영화.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45분.
영화를 보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영화를 본 느낌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천박하게 보이기 위해 앞니까지 만들어 넣었는지 끼우고
걸음걸이까지 무릎이 닫지 않게 아슬아슬하게 걷지만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예쁘고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
감독 겸 남자 주인공이었던 세르지오 카스텔리오라는 사람
참 이기적이면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면서도
아내 아닌 또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참 답 안 나오는 이기적인 남자.
그럼에도 참 자상하고 따뜻하고 능력있고 잘생기기까지 하다는 생각,
감독 겸 배우라는 점에서 독일에서 본
'Gegen die Wand(미치고 싶을 때)'에서 cahit tomruk을 맡은 Birol Ünel과 비슷하다는 생각,
unhappy ending 면에서도 비슷하다 할 수 있으려나...

기욤 뤼소의 <사랑하기 때문에>에 나오는 행방불명된 딸을 찾아
부와 명예를 포기한 정신과 의사 마크와 비슷하다는 생각.

새벽 4시. 자야 하는데 잠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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