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5일 목요일

<소박한책장>그대 이름은 아버지, 하나오와 허삼관

<하나오(a boy meets a papa and baseball)> 마츠모토 타이요, 애니북스

나무와숲 청소년 책꽂이에서 눈에 띄어 빌려온 책이다.

만화에 대해 문외한인데, 오토모 카즈히로 이후 가장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만화가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오토모 카즈히로가 누군지 모르지만, 천재적인 만화가라는 말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전 3권인데, 그중 1권을 빌려왔다.

이야기는 엄마와 함께 살던 공부잘하는 이기적인 아들 시게오가 방학을 맞아 야구에 미쳐 혼자 사는 아버지와 불쾌한 동거를 하면서 시작된다. 시게오는 '하드보일드하구먼.'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몇 장 넘기다 보니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시게오의 말이 촌철살인이다. 시니컬하기도 그렇게시니컬할 수가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
'후회는 아무리 일러도 늦는 거야.'

하나오와 시게오의 대화(누가 아빠이고 누가 아들일까?)
시게오 : 사랑이 다른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하나오 : 편식을 하지 않는 것!!!
시게오 : 아니야, 그건 '라인'이야. 서로를 간섭하거나 속박하지 않는, 서로 간의 선. 개인을 존중한다. 프라이버시를 침법하지 않는다.
하나오 :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 그게 가장 인간적이지!

아버지 하나오는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황만근, 위화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 같은 사람이다. 만날 야구에 미쳐 야구를 하지 않을 때는 낮잠만 자고 방귀만 뀌고 우기기 대마왕.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얼마전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10년쯤 전에 읽고 두번째다. 문학을 거의 읽지 않던 10년쯤 전에 밤새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 나무와숲에서 빌려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허삼관이 피를 팔아 연명했다는 것 말고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왠지 딱딱할 것 같은 중국문학이지만 위화의 글은 두번째도 역시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번엔 그닥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체 내가 감동받았던 귀절은 어디일까 하며 읽었는데, 어느새 마지막장이었다.

문화혁명 전후 찌질이도 가난한 서민들의 삶. 방광이 터질 정도로 강물을 8잔 들이마시고 한번에 400밀리미터 피를 팔고 승리반점에 가서 돼지간볶음과 뜨겁게 데운 황주 두 잔을 마시고 털어버리는 서글픈 삶이다. 흔히 자식, 가정, 가족에 희생하는 건 어머니가 아닌가?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아버지 허삼관이 결혼하기 위해, 아내 허옥란을 위해, 자기씨도 아닌 아들 일락이를 위해, 둘째아들 이락이를 위해 피를 판다.

167쪽
일락이가 방 철장의 아들 머리를 박살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었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조차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더우면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57일간 죽을 마신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냐...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나."

허삼관----허옥란----하소용
-------이락------일락------
-------삼락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은 결혼 전 단한번의 겁탈로, 허삼관과 결혼한 뒤 하소용의 아들 일락이를 낳는다. 처음엔 허삼관이 아들인 줄 알았지만, 자라면서 점점 하소용을 닮아가는 통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온 동네 사람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다.

9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일락이가 자기 씨가 아니라는 것을 안 허삼관은 일락이가 자기 아들이라면 가장 좋아했을 거라면서 그때부터 일락이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락이는 여전히 허삼관에게 잘하는 아들이다.

187쪽
"이 쪼그만 자식, 개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 놓고는......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거 아냐. 널 11년이나 키워 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1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야.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내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할란다. 나중에는 네가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일락이의 생물학적 아버지 하소용이 사고가 나서 거의 죽기 직전일 때 호적상의 아버지 허삼관이 일락이에게 하소용을 위해 딱 한번 울어달라고 한다. 일락이는 자기 아버지가 아니라 울 수 없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하소용의 집 지붕에 올라가 하소용을 위해 우는 일락이를 업고 집으로 데려가면서 다시 한번 일락이가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있으면 칼로 베 어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시간이 흘러 중국이 모택동 주석의 기치아래 문화대혁명을 겪고 허삼관의 두 아들 일락이와 이락이도 노동에 동원된다. 몸이 쇠약해져서 온 일락이를 피를 팔아 돈 몇 푼 쥐어 서둘러 떠나보내는데, 이락이가 형의 농장을 찾아갔을 때 형이 죽기 직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이 오는 추운 겨울날 일락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돈이 씨가 말라버린 허삼관네는 동네 이집저집에서 돈을 빌려 급한대로 아내 허옥란을 시켜 병원에 보내고 자신은 피를 팔아 더 돈을 모아 아들에게 가기로 마음먹는다. 한번 피를 팔면 3개월 동안은 피를 팔아서는 안 되는데, 병원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3일에 한번씩 피를 판다. 무리하게 피를 팔다가 쓰러져 한 병원에서 수혈을 받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리는 불행중 불행도 겪는다.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일락이도 죽지 않았고, 장가도 가고 허삼관네도 먹을만하게 살게 되었다. 다행이다.

그대 이름은 아버지, 하나오와 허삼관
사실 나의 개인적 가정사를 볼 때 그런 아버지는 상상이 안 간다. 친아버지하며 시아버지하며 전형적인 가부장적이며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냥 우리 아버지 때 사람들은 다 그렇다...라고 생각한다. 통은 까칠하기는 하지만, 가부장적이지도 않고 권위적이지도 않다. 통이 아버지가 된다면 어떤 아버지가 될까? 우리 시대 아버지 말고, 우리 또래 아버지들은 어떤 모습일까?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나무 심기


나무와숲에 심을 나무를 고르고 있는 중.

'여행과 책' 부분을 맡았다. 어린이책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15권을 추천하는 건데, 15권 채우기가 쉽지 않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보니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는다.
너무 내 취향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책을 아이들이 좋아할까? 은근히 부담된다.

단순한 여행보다는 기행문학 쪽을 찾아보고 있는데, 여행과 책을 결합한 책도 보인다.
일단 지금까지 고른 책은

책에 관한 책
1.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타치바나 타카시, 청어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독서가 중의 독서가. 나도 고양이 빌딩 같은 책을 보관하는 서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통이 알면 거품 물겠지만. ㅋ

2. <한국의 책쟁이들> 임종업, 청림출판
한겨레 18.0도 연재할 때도 즐겨 읽던 꼭지였는데,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나도 사고 싶은 책이다. 책에 미친 미련퉁이들의 보고서. 그들의 책에 대한 끝없는 구애가 좋다.

3. <세계 도서관 기행> 유종필, 웅진지식하우스
기행을 찾다가 걸린 신간이다. 뭐, 내가 여행기를 내면 그런 돈 많은 데다 내면 좋겠다 싶지만, 사실 웅진지식하우스 책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보다 돈이, 자본이 책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빵빵한 필자들에게 엄청난 뒷돈을 대주고 책을 쓰게 하는, 그들의 원고를 사고 있다는 느낌. 이런 책들이 얼마나 갈까, 이런 구조가 얼마나 갈까,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 책이 얼마나 될까. 그런대도 서점에는 진중권과 정재승이 쓴 책이 버젓이 베스트셀러이다. 그래서 나는 배가 아프다. 책 한권을 오랜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 만드는 출판사도 많은데 그런 출판사는 마케팅할 돈이 없어 밀리고 또 밀린다. 독자들은 그걸 아는지. 광고에 현혹되지 말지어다.
이렇게 뒷다마를 까는데도 이 책은 웅진지식하우스 책이다. 필자의 약력은 국회도서관관장이다. 사실 직함도 맘에 들지 않는다. '장'자 들어가는 건 된장, 고추장 빼고 다 두드러기 나는 나. 책을 살펴보고 마음에 들어 필자의 다른 책을 찾아보니 처녀작이다.
마음에 든 이유는 필자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세계 도서관을 다녔다. ㅋ. 아내도 사서란다. 우리나라 도서관 중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느티나무 도서관'을 소개하고 있고, 제주도를 도서관의 섬으로 소개하고 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책을 지키는 사람이 없단다. 없어지면 누군가가 보고 있지 않겠냐 한다. 그런 부분을 읽어내는 눈이 마음에 들었다. 제주도를 도서관의 섬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제주도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가 안내한 대로 제주도 도서관 기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7.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박인하, 랜덤하우스코리아
*번외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 이명석, 홍디자인

여행 관련 책
1~2. <여행의 기술>(알렝드보통, 이레)과 <먼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여행필독서. 알렝드보통이냐 무라카미 하루키냐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말하는 것과 같은 무모함.

<여행의 기술> 표지인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을 보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떠나고 싶다.

알렝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바베이도스의 눈부신 바닷가 사진이 실린 여행 안내 전단지를 보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여행의 달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날 문득 먼북소리를 듣고 37살에 문득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내 귀에 귀를 기울였다. 먼북소리가 들리는지. 그리고 먼북소리를 찾아 길을 떠났다.

3. 준, 넥서스BOOKS
'카오산로드'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된 책. 동남아여행하면 맨 세부, 발리, 푸켓, 몰디브 럭셔리한 신혼여행지, 휴양지로만 생각되고, 맨 코끼리쇼, 원숭이쇼, 게이쇼, 쇼쇼쇼, 절절절, 트레킹, 관광관광관광인 줄만 알았는데, 방콕의 카오산로드라는 곳은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말에 어떤 곳인가 정말 궁금했다.

태국 방콕에 도착해 혼자 처음 찾아간 카오산로드. 24시간 술을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 타투, 인터넷카페, 게스트하우스, 헌책방, 길거리에 넘쳐나는 노점상과 호객꾼, 그리고 전세계 여행자들. 등산화, 슬리퍼 대롱대롱 매단 내 키만한 배낭을 메고 카오산로드로 입성한다.

굴뚝 없는 산업 관광대국 태국. 전세계 항공이 거쳐가는 허브 중 허브. 인도도 네팔도국도 유럽도 남미도 아프리카도 태국에서는 갈 수 있다. 여행을 동경하는 사람, 긴 여행을 꿈꾸는 사람,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 못 떠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

4. <지구촌 사람들 지구촌 이야기> 고마쯔 요시오, 한림출판사, 38,000원
전생에 무슨 역마살이 끼었는지 여행에 관한 책, 다른 세계 이야기를 다룬 책을 보면 사족으로 못쓴다. 뭐든 무조건 사서 모아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비싸서 못샀다. 예전 회사에서 구입신청해서 가끔씩 펼쳐보며 흐뭇해하던 책.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면 집은 풍비박산났겠지. 얼마나 돌아다녔길래 이렇게 많은 사진으로 책을 냈을가? 정말 탐난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기자기하고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 지구촌 사람들 이야기.
완전 강추!!!

5. <헝그리 플래닛_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페이스 달뤼시오 지음, 윌북
이 책을 여행으로 보기엔 좀 어렵지만, 훌륭한 사진 자료를 보면 전 세계를 여행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학과 환경 문제를 다른 국제적인 보도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기자인 피터 엔젤과 TV 뉴스 프로듀서 출신의 그의 아내 페이스 달뤼시오가 24개국을 아우르며 서른 가정의 저녁 식탁을 함께 하며 취재한 책.

모든 사람은 먹는다. 지역에 따라 각기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는 점은 같다. 이 책은 전 세계 24개국 가족들의 이야기와 일주일치 식품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가공된 포장식품을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대형슈퍼마켓에 갔을 때 엄청 놀랐다. 싱싱한 생선, 해산물을 파는 게 아니라 대부분 냉동식품을 사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즐겨 먹는 것은 빵, 치즈, 우유, 요플레, 무슬리, 잼, 햄, 소시지, 고기, 피클, 오만가지를 담은 저장식품 통조림. 스파게티를 할 때도 면을 삶아 소스 통조림을 따 부으면 끝이고, 빵에 양치즈, 염소치즈, 소치즈를 한장 얹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네덜란드 Enschede라는 도시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그들의 아침 식단.

외려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며 느낀 건 나라가 발전하지 않을수록 밥상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 나라에서 나고 자란,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싱싱한 것, 건강한 것만을 먹고 산다.
라오스의 소박한 밥상

세계화, 세계화 떠들어대지만 세계화란 결국 맥도널드를, KFC를, NIKE를, TESCO를, BENZ를, NISSAN을, HONDA를, 이마트를, 홈플러스를, 삼성을, 현대를 사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18쪽
세계의 식생활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각지의 전형적인 가정을 골라 그들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기르며, 무엇을 요리하고, 무엇을 먹는지를 관찰했다. 매번 취재는 그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분량의 식품을 늘어놓고 가족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것 다 모아놓고 보니 급변한 변화의 시기를 보여주는 '음식 세계 지도'가 탄생했다.

6. <희망을 여행하라_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 이혜영, 임영신, 소나무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가 아니라 '관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정여행을 다녀오진 않았지만, 그래도우리 나름대로 다른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전거, 공동체, 홈스테이, 다국적 기업이 판치는 관광지, 럭셔리한 호텔은 가지 않은 것. 돈이 없어서도 못 갔지만. ㅋㅋ.

소비, 유명한 곳만 찍고찍고 다니며 관광객만 마주하는 피곤한 관광이 아닌,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희망을 함께 발견하는 여행을 추천하는 책.

7.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동아일보사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잘 알려진 빌 브라이슨. 그러나 빌브라이슨은 여행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여행자들의 거리 헌책방에 가면 책꽂이 한칸은 차지하고 있는 빌브라이슨의 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너무 어렵고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20년 동안 영국에서 살다 고국 미국으로 건너가 친구와 함께 3360킬로미터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하고 쓴 책이란다.
태국 치앙마이 헌책방 Gecko에서

태국 코판강 헌책방에서

8.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_스페인 산티아고> 김남희, 미래인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일까?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인도? 라오스 같은 오지? 그에 못지 않게 가고 싶어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스페인 순례자의 길 산티아고. 1년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은 한국인을 만난 곳이 스페인 산티아고와 라오스 방비엥, 무앙응오이누아였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숙소 알베르게에서 10명 가까이 만난 날도 많았다.
그 길을 걷고 돌아온 분이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리산 둘레길, 강화 둘레길, 심지어 파주 심학산에도 둘레길이 생겼다. 길을 걷는다는 건 묘한 매력이 있다.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한발한발 내딛으며 하늘,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 길.
산티아고에서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일흔살 노부부. 쌀가마니만한 배낭을 매고 이 길을 걷는 것이 행복하다 했다. 이번엔 자전거로 갔지만, 나도 예순살, 일흔살에 배낭하나 매고 그 길을 걷고 싶다.
서점에 가면 산티아고 관련한 책이 거짓말 안 보태고 한 트럭은 될 거다. 그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하다 어중이 떠중이 남이 가니 나도 간다 하는 식의 책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알려진 책으로 추천한다.

9. <아빠와 딸 세계로 가다_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 이희수, 이강온, 청아출판사
이슬람 전문가 이희수 교수님이 딸과 함께 전세계를 여행하며 쓴 책.

10. <기차홀릭 테츠코의 일본 철도 여행> 문정실, 즐거운상상
*즐거운 상상의 다른 테마여행
<일본 스토리 여행_소설과 영화의 감동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형준, 즐거운상상
<유럽동화마을 여행> 이형준, 즐거운상상
<여행자의 방> 미노, 즐거운상상

11. <유럽 축구 기행> 서형욱, 살림
여행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기타
1. <한눈에 펼쳐 보는 크로스 섹션> 리처드 플라트 글, 스티븐 비스터 그림, 진선아이

2. <한권으로 보는 그림 직업 백과> 조은주, 유수정 글, 마정원 그림, 진선아이

3. 김영사 앗, 시리즈
<영차영차 영국축구>
<축구가 으랏차차>
<와글와글 월드컵>
<팝뮤직이 기타등등>
<패션이 팔랑팔랑>
<건축이 건들건들>
<만화가 마냥마냥>

*도감류
보리 <식물도감> <나무도감>

*추천만화시리즈
<식객>
<명가의 술>
<헬로우 블랙잭>
<내마음속의 자전거>

*나무 과정이 볼만한 잡지 : 과학쟁이, 위즈키즈

*차차 추천
<빨강머리앤> 1, 2, 3 루시 M. 몽고메리, 시공주니어
<빨간머리앤> 1권짜리.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인디고

*그외 나무와숲에서 이빨 빠진 책들
<먼나라 이웃나라_일본편> 일본인편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1

2010년 7월 9일 금요일

나무와숲 후기

아주 오랜만에 생기 넘치는 모임이 있어 모처럼 후기를 써 본다.
나무와숲은 통네 학교 <더불어가는배움터길>의 도서관 이름이다.
중고등 통합과정인데, 나무는 중등과정, 숲은 고등과정이다.
그래서 나무와숲. 이름이 맘에 든다. 나무와 숲의 지킴이.
뭔가 전생이 각별한 인연이 있었을 거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ㅋ. 숲은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려는지 모르지만...

나무와숲은 청소년지킴이와 어른지킴이로 구성되어 운영된다.
어른지킴이는 어머니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오늘 모임은 어른지킴이 모임이다. 처음 참가하는데 상반기 평가 모임이란다. ㅋㅋ.

돌고래, 담쟁이 두 샘과 어머니 다섯 분, 그리고 나 이렇게 모였다.
나는 1학기 끄트머리에 깍두기로 끼었다.

상반기 지킴이 활동 평가, 도서선정위원회 회의 보고, 얼마전 있었던 시음회 평가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가장 중요한 논제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책에 흥미를 가질까, 많이 읽을 수 있게 수 있게 할까? 어떻게 하면 도서관에 끌어들일까? 도서관에 오래머물게 할까 등등이었다.

예전 회사 다닐 때 회의가 생각났다. 어떤 책을 만들면 좋을까? 어떤 책이 잘 팔릴까? 그 중심에는 책을 읽는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구매자인 엄마들의 니즈가 중요하다. 엄마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어디서 파악해야 할까...등등등...

여기 있으니 엄마들이 바라는 것이 느껴진다. 패션잡지, 스포츠잡지라도 두어서, 아니 다독왕에게 패션잡지 상품권을 주어 아이들을 도서관에 오게 하자. 주니어명작이라도 읽게 해서 고전에 관심을 갖게 하자. 주니어플라톤이라는 독서토론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어 논술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지긋지긋했던 논술. 고전을 어린이눈높이에 맞게 줄이고 각색한 다이제스트주니어세계명작은 오히려 그것을 읽고 다 읽었다고 생각해서 정작 원서는 읽지 않을 수 있다, 고전은 고전 그대로 읽어야 제맛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거라도 읽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다. 그리고 대안학교임에도 논술잡지, 과학잡지에 대한 니즈가 있다.

도서선정모임에도 얼레벌레 참가하게 되었다.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현재 나무와숲의 책꽂이를 보면 성인도 읽을 수 있는 일반도서와 청소년도서로 구분되어 있다. 아직 3000권이 안 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청소년 도서도 아이들이 손이 갈 만한 책이 안 보이고, 일반도서 역시 청소년이 읽기엔 무거운 책이 많다. 그래서 더 고민이다. 뭐 행복한 고민이라 해야 할까? 책을 만들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책에 파묻혀 살면 좋겠다 생각했다. 書痴, 책바보라 해도 좋으니 책만 읽으며 지내고 싶었다. 이제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도서관지킴이로 책을 소개하고, 선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렇게 훌륭한 기회가 주어지다니 복도 많다 싶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서관지킴이에 대한 자족이 아니라, 오늘 모임의 분위기다. 지킴이들이 엄마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말 열정과 의욕이 넘친다.

"방학에 도서관 운영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희망 사항은 2번은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안 되면 최소 1번이라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모임하러 왔다가 책이라도 빌리지 않을까요?"
이때 난 속으로 '에이, 방학인데 쉬지 뭘 문을 열어.'
다른 어머니 왈, "아무때고 상관없으니까 제가 지킬게요."

"도서 선정에 대한 지킴이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책 선정도 중요하지만, 희망도서를 추천한 사람에게 책을 구입하면 문자로 알려줘서 가장 먼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대출 권수가 작으면 온 가족의 이름을 동원해서 책을 대출해 갑니다."
"막대그래프를 만들어서 누가누가 많이 읽는지 표시해요."
"학기 중에 못 읽은 애들을 위해서 방학 깜짝 이벤트를 하는 거예요. 방학 때 많이 읽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하면서요." 
"저는 목요일 담당인데, 아이들에게 대출 영업을 하러 갑니다. 얘들아, 목요일은 무슨 날? 목요일은 책 대출하는 날!" 

무슨 책이 갑자기 사금융 대출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대출은 1582-8210. 원캐싱원캐싱.

아무 준비없이 와서 즐겁게 웃으면서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모두 바쁘신 것 같은데 열심히 의견을 내셨다. 도서관에 가장 많이 오는 나현이의 어머니는 詩吟會도 試飮行事로 만드시며 시종일관 분위기를 재미있게 주도하셨다.
실은 어제도 책선정위원 회의가 있었는데, 어제의 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한층 활기가 느껴진다. 이런 게 열정 바이러스인가?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 옆에서 옮을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푸념, 불평만 털어놓으면 나는 해방될지 모르나 다른 사람이 푸념, 불평, 불행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의욕적이고 건강하고 희망이 담긴 긍정의 힘은 다른 이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내 불행은 내 불행으로 끝내야 한다. 밝고 긍적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나에게 그런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얼굴에 만날 인상만 쓰고 사람들과 말섞기도 싫고, 파주까지 다니는 것도 싫고 모든 인관관게도 싫고 그저 그만두는 것만이 나에게 살 길이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1년 여행이 숨통을 트게 해 주었고, 이제 뭔가 새롭게 하고 싶다는 의욕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쉬어야 할 때마다 쉬진 못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숨이 깔딱깔딱할 정도로 절박한 때는 찾아온다. 쉬어야 할 때 쉬어주는 것도 긴 인생에 크게 손해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2010년 7월 8일 목요일

어지러운 시대, 바람 앞 촛불 같았던 여인네들의 삶

요즘 도서관을 드나들며 하루 3~4시간씩 책을 읽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권이 몇 권이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나노부 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 천하를 통일한 사람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우습다. 딱히 일본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다.
뭐 일본 문화에는 관심이 있다.
이어령 교수가 쓴 <축소지향형의 일본인>, 수학의 달인 김용운교수가 쓴 <일본인과 한국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 전쟁과 원폭의 피해에 대해 다룬 <맨발의 겐>을 동시 다발로 보고 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게 된 건 아주 우연이다.

도서관 책꽂이에서 눈에 띄는 책 몇 권을 갖다놓고 자리에서 읽곤 하는데,
쌀집아저씨 김영희 PD의 아프리카 여행기 <헉, 아프리카>가 눈에 띄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지,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린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장소, 마신 맥주, 배낭 등을 그림으로 그렸다. 부러워라....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꾀꼬리가 울지 않으면
오다 노부나가는 꾀꼬리를 죽이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꾀꼬리를 울게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꾀꼬리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이름도 겨우 외우는 난데, 그들의 '새'에 대한 취향까지 알다니, 대단한걸?
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뭣도 모르면서
2000년 혼자 일본을 여행했을 때 닛꼬를 보지 않고는 일본을 봤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
닛꼬를 찾아갔는데, 거기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인 동조궁(도죠구)을 갔었더랬다.
우낀 게 사람까지 신격화해서 동조궁 신사라고 한다.
엄청 화려한 색으로 치장햇고,
신사 앞에 엄청 크고 쭉쭉 뻗은 삼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아직 전권의 수도 파악을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 읽을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일본에서는 1억 5천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란다.
중국을 알려면 <열국지>를 읽고 일본을 알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란다.
역사드라마도 싫어하는데, 역사소설이라니 과연...

첫장을 펼치니 당시 권력을 가졌던 무사들의 지형도가 나온다.
맨 뒤로 가니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계도와 인물 사전, 당시 시대 어휘 사전, 시간 구분, 복식, 연표 등등이 있다. 이해도 안 되면서 뚫어지게 보고 또 봤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맹우였다고 한다. 맹우라는 절친이라는 뜻이겠지?
오다 노부나가가 9살이었을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났다.

난세의 영웅들 탄생이 그러하듯,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탄생도 정략결혼의 결과물이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이 성의 성주와 저 성의 성주가
살기 남기 위해 자기 딸과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부모형제도 단칼에 베어야 하는,
싸우면서 서로 미워하고 미움받는 끝도 없는 무간지옥이다.

오늘 1권을 끝내고 2권에 들어갔다. 아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걸음마를 하는 시기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칼과 함께 살아가는 남자들의 그림자 같은 불행한 여인들의 삶만 읽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어머니 오다이는 아버지 히로타다의 계모 케요인의 딸이기도 하다.
옆 성주의 다섯 아이를 낳은 케요인은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히로타다의 아버지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 사랑하는 아내를 남에게 빼앗긴 오다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마저 그 자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야 했다.
히로타다에게는 소실 오히사가 낳은 켄로쿠, 치케이 두 아들이 있다. 치케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한날 한시에 태어났다. 오다이가 정실이라는 이유로 오히사의 둘째 치케이는 걸음마도 떼기 전에 출가를 시켜야 했다. 하지만 여자 팔자 뒤둥박이라고, 오다이의 행복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히로타다의 세력이 약해지자 주변 성주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결국 히로타다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오다이와 이혼하고 오다이를 본가로 돌려보낸다. 부록을 보니, 오다이는 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으로 나와 있다.

우리나라 조선초기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는 일들. 여자는 그저 대를 이을 씨받이,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노리개와 같은 불행한 운명이다. 너무나도 순종적으로 남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는 여인네들의 삶이 서글프다.

<이야기 일본사>를 읽다 당시 시대 상황을 나타내는 '정략결혼'에 관한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정략결혼, 210~211쪽
전국시대의 여성들은 인격마저 무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전국시대 이전의 가마쿠라 시대의 여성은 상속권까지 인정받고 있었고 그후 무로마치 시대에도 가마쿠라 시대에 비하면 그 권리가 다소 줄어든 감이 있긴 하였으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충분히 보장받고 있었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인격이 무시당하는 사례는 흔히 정략결혼에 의해서였다.
사이토 도산의 딸로 오다 노부나가의 아내가 된 노히메를 비롯하여 호죠 우지야스의 딸로 다케다 가쓰요리의 아내가 되었던 여성, 노부나가의 누이동생으로 아사이 나가마사의 아내가 되었다가 나가사마가 죽자 시바다 가쓰이에의 아내가 된 여성 등 정략결혼으로 인권을 무시당한 여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노부나가의 아내 노히메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노부나가는 매일 밤 노히메가 깊은 잠에 들기를 기다려 슬그머니 그 방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노히메가 어느 날 노부나가에게 그 이유를 묻자, 노부나가는
"부부 사이에 숨기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요. 내 진정 그 비밀을 말하리다."
라며 다음과 같은 비밀을 털아놓는 것이었다.
"일찌기 미노국의 중신과 은밀히 약속하기를 그들이 장인(사이토 도산)을 죽이고 봉화를 올릴 터이니 봉화가 오르거든 즉시 공격해 가기로 하였다오. 그리하여 매일 밤 그대가 잠들기를 기다려 미노국 쪽에서 봉화가 오르는가를 살핀 것이오. 행여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마시오."
그러나 노히메는 이 비밀을 곧바로 그의 친정아버지 사이토 도산에게 전하고 말았다. 그러자 도산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의 중신을 죽여버렸다. 결국 노히메는 노부나가의 책략에 말려들고 말았다. 사실은 노부나가가 그의 아내가 틀림없이 자신의 말한 비밀을 도산에게 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고 꾸며댄 이야기로 사이토의 분열을 꾀한 것이었다.
애정괴 신뢰로 맺어져야 할 부부 사이가 이렇게 험악해진 것은 바로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이다.
다케다의 경우 무사는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비록 부부 단둘이만의 자리에서도 칼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정략결혼으로 시집온 여성들은 결혼한 그날부터 소소한 일까지 모두 감시를 받게 마련이었다.
외계와의 접촉이 단절당한 채 저택 깊숙한 곳에 틀어박히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최후에는 자결을 강요당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지기도 했다.
인간 본래의 인격을 무시하고 자신의 누이나 딸을 결혼시킨 후 불필요하거나 방해되는 존재가 되면 그녀의 남편과 함께 모두 죽여버리는 것이 바로 정략결혼의 비정함이었다.

이리 오라면 이리 가야 하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찍소리도 못하는, 여인네들의 삶이 개보다도 못한 시대가 있었다니. 무로마치 시대나 가마쿠라 시대에는 그나마도 나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매정하고 비정하고 비정상적인 일들은 인간사회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가? 전쟁이 터지면 가장 힘이 없고 약한 존재는 여성, 노약자 들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그 남이란 가족도 포함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전쟁터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고마워해야 하나.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왜 전쟁에 열광할까?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2010년 7월 3일 토요일

술고프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명색이 아오조라, 푸른하늘인데, 오늘처럼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이 너무나 좋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막걸리처럼 보이고.
박달동 생활 만 2개월만에 첨으로 집에서 700미터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내려다보이는 안양천. 캬, 오늘 정말 술맛 나겠다...감탄이 절로 나오는 날.

해도 요즘 내 생활이 마냥 칠렐레 팔렐레 할 수만은 없어 
가까이 사는 갱이언니부터
파주로 매일 유배 아닌 유배를 떠나는 은영부터
지난 주 일욜 새벽까지 끌고 다니며 양주 사준 웡기부터
술 하면 떠오르는 최목수부터 
지난번 벙개도 쌩깠던 동기 모임부터 별의별 껀수가 다 생각나고 술이 고팠다.

술 자체가 좋다기보다 그냥 이런 날 술꾼들끼리 모여 낄낄 거리는 그 분위기가 더 그리웠다고 해야 하나. 성삼 오라버니도 생각나고, 영우 오라버니도 생각나고. 
직업, 성별, 빈부차, 성적 취향,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술꾼들이 마구 생각나는 날.
대학교 교생 실습 갔을 때 담임선생님도 생각나네. 선생님도 한술하셨거든.
볼프람도 생각난다. 하루종일 자전거와 씨름하고 5시쯤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데,
일단 맥주 2병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시작하는 볼프람.
흑, 오늘 같은 날 볼프람이랑 술마시면 정말 좋겠다. 볼프람은 뭐하고 있을까? 

그런데 우리의 술통, 통이
회의가 있다고 오후에 학교에 갔는데, 아무도 통이 오늘 제정신에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8시에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럴 수가!!!
그러더니 학교 축제를 위해 징집 당해 요즘 열심히 추고 있는 스윙댄스를 춘다. 


허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살짝 맥주 한 잔할까 운을 띄우더니 얼마나 술을 참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고 
자신을 시험대에 올린다. 

술에 대한 본능을 가까스로 이성으로 누르고 컴 앞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11시 반쯤 술꾼 은영한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묻는다. 
"언니, 지금 어디예요? 지금 당장 갈게요. 하하하하."
전화기로 살짝 술냄새가 전해온다. 
"오늘 같은 날 언니가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거 같아서, 하하하하. 마신 술이 좀 부족하기도 하고요, 하하하하. 염치불구하고 그리로 가려고요, 하하하하."
"어? 나 시댁이야."
"지금 어디야?" 
"합정역이요. 하하하하."
내 맘이, 지금 합정역 아니 철산역으로 달려가고 싶은 게 지금 내 맘이야. 

내일 시간이 되면 무한도전 하는 시간을 피해 만나자고 하고 
아쉬운 마음을 진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통은 헤드폰을 끼고 브라질 : 네덜란드 축구를 보고 있다. 
마침 담배를 피러 나가는 통에게 속삭였다.
"맥주 3병 콜?"
하하하하, 나는 결국 지금 맥주를 마시고 있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나무와숲에서 생긴 일

요즘 통네 학교 도서관 '나무와숲(이름이 맘에 든다.)'에서 일주일에 한번 2시간씩 도서관지킴이를 하고 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하루에 고작 5~10명이 책을 빌려가는 도서관이라 지킴이로 할 일은 없다. 청소년지킴이와 잘 지내는 일이 어른지킴이가 할 중요한 일이라고 들었다. 그 활동으로 청소년지킴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 있다.

내가 당번인 날 청소년지킴이인 아이는 눈썹이 진하고, 말도 붙임성있게 잘하는 아이이다. 첫날은 아무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자리만 지키다 왔고, 두번째날은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부담만 갖다가 결국 가는 당일날 집에 있는 책꽂이에서 책을 하나 뽑아 읽어주자 싶어 가져갔는데, 청소년지킴이 왈,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이냐고 묻는다. 잉, 아닌데. 몰랐는데. 했더니 당연히 알 줄 알았죠. 지킴이 일지에 서지 목록도 써야 하는데. 이런. 일주일 내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공염불이었네.

나랑 같은 당번인 아이는 책이 싫단다. 그럼 왜 도서관지킴이를 하느냐 했더니 자기는 학교가 좋단다. 초등학교도 인근 벼리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나왔단다. 일반학교에 대해서는 친구들을 통해 들은 게 전부여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가 좋단다. 그래서 학교를 위해 뭔가 하고 싶었는데, 도서관지킴이를 구한다고 해서 자원했다고 한다. 그외에서 컴퓨더 관리도 한다고 한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어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도서관의 책이 아니어서 펼쳐보지도 못했다. 일지를 살펴보니 박기범의 <문제아> 같은 책을 읽어준 게 보인다.

ㅋ. 내가 가져간 책은 <일본고서점그라피티>라는 일본헌책방에 관한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일본 헌책방을 순례하면서 내부구조도를 그리고 헌책에 대한 의견, 헌책방에서 구한 책 이야기 등을 써 놓은 책이다.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려고 선택한 책인데 물건너 갔다. 똑같은 책을 도서관에 구입해서 갖춰놓고 읽어주어야 할까, 암튼 보류.

그리고 나서 황급히 책꽂이를 뒤져 고른 책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우리나라에서 한비야를 모르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다소 과장이겠지만, 그래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물, 한비야. 역시 그 아이도 알고 있었다. 책꽂이에 꽂혀 있어서 알고는 있지만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옳거니. <중국견문록> 외에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같은 책이 있었지만, 내가 읽은 책인 <중국견문록>을 골랐다.

하루에 읽어 주는 양은 한 챕터. 책을 읽어 주기 전에 책을 고를 때 어떤 것을 먼저 보냐고 물었다. '차례요.'라고 대답한다. 먼저 저자 약력을 소개하고, 판권을 살펴본 뒤, (머릿말을 읽어주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장을 읽어주었다.

한비야는 44살에 중국어학연수를 떠났다. 단지 전세계 4분의 1이 쓰는 언어라서 배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국제구호단체에서 일을 하려면 중국어가 필요하겠다 싶어 중국어학연수를 떠났다 한다.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외국어 다섯 가지를 마스터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첫장 "너무 늦게 왔는데요"를 읽어주고 어땠냐고 물으니, 감동적인데요 한다. 실패하지는 않았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책 잘 읽으시는데요. 이 녀석이, 귀가 뚤리긴 했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듣다니. ㅋ. 44살이라는 나이에 배낭 하나 매고 1년 어학 연수를 떠날 수 있는 한비야의 용기가 부러웠다. 라오스를 여행할 때 도시 혹은 두메산골에서 '월드비전' 사무실과 '월드비전' 파놓고 간 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 다음에도 이 책을 읽을까 하니, 냉정하게 책도 많은데요, 한다. 그래그래. 알았어, 다음엔 다른 책으로...ㅠ.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명색이 도서관사서라고 앉아 있다가 책 한권을 빌려 왔다. 행여 누가누가 책 많이 빌리나 순위에 들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이 많은 책을 두고 그냥 가는 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그날따라 눈에 띄었던 창비에서 낸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뽑아왔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부채부터 해서 꽤나 많은 광고와 판촉물을 날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도 읽지 않았던 책인데.

목록을 보니 우선 <책>이라는 단편이 눈에 띈다. 책읽기보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나는 책이라는 말만 나오면 눈이 저절로 그리로 간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당숙'의 포스도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책을 사다 나르는 나의 행태에 불만을 느끼는 통이 통감할 내용이 아닌가 싶어 잠깐 옮겨 본다.


당숙은 책이 많다. 책이 많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열권으로도 많은 사람이 있고 만권도 적은 사람이 있다. 당숙의 기준으로 책이 집안을 채우고 넘치게 되면 많은 것이고 더 들어갈 여우가 있으면 적은 것이다.
당숙에게 책이 많아진 건 이미 3년이 넘었다. 이로 인해 고민스러워진 사람은 당숙이 아니라 당숙모다. 당숙이 이런 일로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많은 책을 집에 들여놓지도 않았을 것이다.(이 대목에서 나는 통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좀더 대범하게 책을 들여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당숙모는 3년 전부터 집을 채우고 남은 책은 아파트 지하에 창고를 지어 보관해 왔는데 그 창고마저 비워주어야 할 형편이 되자 이삿짐쎈터에 책을 맡겼다고 한다. 종이상자에 책을 담아 보관해주는 비용은 한달에 십오만원이고 일년으로 장기계약하면 십이만원으로 할인은 해준다.(옳거니)

대략 줄거리는 이처럼 책이 많은 당숙을 둔 조카가 당숙의 책을 맡아주겠다고 나서고 모월모시 그 책을 자기 집으로 옮기는 이삿날의 이야기다. 이삿날 책보다 먼저 조카의 집에 온 당숙은 조카의 집에 있는 잡지 몇 권에 넋이 나가 자기 책 이사는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고 책만 읽다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표현했을까? 싶은 마음과 함께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이어 이 책의 표제작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과 <천애윤락> <욕탕의 여인>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천하제일 남가이>를 죽죽 읽어나갔다.

과연 듣던 소문대로 성석제의 입심이 장난이 아니다. 김원룡이 쓴 <나의 인생 나의 학문>을 읽으며 킬킬 댔을 때 무슨 만화책이라도 읽냐고 놀림을 받았는데, 성석제의 소설 역시 가슴을 후벼파는,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찌질이 루저들의 이야기임에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빅재미를 주고 웃음이 뻥뻥 터진다.

주인공 하나같이 그렇게 바보처럼 살 수가 없다. 그렇지만 도무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있나. 세상의 모든 비극은 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인가? 읽는 내내 영화 <파이란>의 최민식이 떠오른다. <천애윤락>의 주인공 친구 동환이 이야기를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눈물이 나서 혼났다. 옘병. 나보고 이 책 인물들처럼 살라고 하면 진작 접싯물에 코박고 죽었을 거다. 이런 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