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일 토요일

술고프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명색이 아오조라, 푸른하늘인데, 오늘처럼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이 너무나 좋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막걸리처럼 보이고.
박달동 생활 만 2개월만에 첨으로 집에서 700미터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내려다보이는 안양천. 캬, 오늘 정말 술맛 나겠다...감탄이 절로 나오는 날.

해도 요즘 내 생활이 마냥 칠렐레 팔렐레 할 수만은 없어 
가까이 사는 갱이언니부터
파주로 매일 유배 아닌 유배를 떠나는 은영부터
지난 주 일욜 새벽까지 끌고 다니며 양주 사준 웡기부터
술 하면 떠오르는 최목수부터 
지난번 벙개도 쌩깠던 동기 모임부터 별의별 껀수가 다 생각나고 술이 고팠다.

술 자체가 좋다기보다 그냥 이런 날 술꾼들끼리 모여 낄낄 거리는 그 분위기가 더 그리웠다고 해야 하나. 성삼 오라버니도 생각나고, 영우 오라버니도 생각나고. 
직업, 성별, 빈부차, 성적 취향,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술꾼들이 마구 생각나는 날.
대학교 교생 실습 갔을 때 담임선생님도 생각나네. 선생님도 한술하셨거든.
볼프람도 생각난다. 하루종일 자전거와 씨름하고 5시쯤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데,
일단 맥주 2병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시작하는 볼프람.
흑, 오늘 같은 날 볼프람이랑 술마시면 정말 좋겠다. 볼프람은 뭐하고 있을까? 

그런데 우리의 술통, 통이
회의가 있다고 오후에 학교에 갔는데, 아무도 통이 오늘 제정신에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8시에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럴 수가!!!
그러더니 학교 축제를 위해 징집 당해 요즘 열심히 추고 있는 스윙댄스를 춘다. 


허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살짝 맥주 한 잔할까 운을 띄우더니 얼마나 술을 참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고 
자신을 시험대에 올린다. 

술에 대한 본능을 가까스로 이성으로 누르고 컴 앞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11시 반쯤 술꾼 은영한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묻는다. 
"언니, 지금 어디예요? 지금 당장 갈게요. 하하하하."
전화기로 살짝 술냄새가 전해온다. 
"오늘 같은 날 언니가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거 같아서, 하하하하. 마신 술이 좀 부족하기도 하고요, 하하하하. 염치불구하고 그리로 가려고요, 하하하하."
"어? 나 시댁이야."
"지금 어디야?" 
"합정역이요. 하하하하."
내 맘이, 지금 합정역 아니 철산역으로 달려가고 싶은 게 지금 내 맘이야. 

내일 시간이 되면 무한도전 하는 시간을 피해 만나자고 하고 
아쉬운 마음을 진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통은 헤드폰을 끼고 브라질 : 네덜란드 축구를 보고 있다. 
마침 담배를 피러 나가는 통에게 속삭였다.
"맥주 3병 콜?"
하하하하, 나는 결국 지금 맥주를 마시고 있다. 

댓글 3개:

  1. 하하핫!!
    전화가 그랬단 말이죠 ㅋㅋㅋ
    다시 보니 글만으로도 술냄새가 날것 같아요 ㅎㅎㅎ

    왠지 부끄럽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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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ㅋㅋ. 주말 잘 쉬었어? 조만간 만나서 한잔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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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ㅎㅎ 어제 잠깐이라도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결국 일요일에도 집에서 꼼짝못한거 있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날엔 나도 볼프람이 너무 그리울 것 같아요. ㅎ

    그리울때 만날 수 있고, 술먹고 막 주정부릴수 있고..
    그래서 참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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