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8일 목요일

어지러운 시대, 바람 앞 촛불 같았던 여인네들의 삶

요즘 도서관을 드나들며 하루 3~4시간씩 책을 읽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권이 몇 권이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나노부 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 천하를 통일한 사람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우습다. 딱히 일본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다.
뭐 일본 문화에는 관심이 있다.
이어령 교수가 쓴 <축소지향형의 일본인>, 수학의 달인 김용운교수가 쓴 <일본인과 한국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 전쟁과 원폭의 피해에 대해 다룬 <맨발의 겐>을 동시 다발로 보고 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게 된 건 아주 우연이다.

도서관 책꽂이에서 눈에 띄는 책 몇 권을 갖다놓고 자리에서 읽곤 하는데,
쌀집아저씨 김영희 PD의 아프리카 여행기 <헉, 아프리카>가 눈에 띄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지,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린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장소, 마신 맥주, 배낭 등을 그림으로 그렸다. 부러워라....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꾀꼬리가 울지 않으면
오다 노부나가는 꾀꼬리를 죽이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꾀꼬리를 울게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꾀꼬리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이름도 겨우 외우는 난데, 그들의 '새'에 대한 취향까지 알다니, 대단한걸?
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뭣도 모르면서
2000년 혼자 일본을 여행했을 때 닛꼬를 보지 않고는 일본을 봤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
닛꼬를 찾아갔는데, 거기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인 동조궁(도죠구)을 갔었더랬다.
우낀 게 사람까지 신격화해서 동조궁 신사라고 한다.
엄청 화려한 색으로 치장햇고,
신사 앞에 엄청 크고 쭉쭉 뻗은 삼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아직 전권의 수도 파악을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 읽을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일본에서는 1억 5천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란다.
중국을 알려면 <열국지>를 읽고 일본을 알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란다.
역사드라마도 싫어하는데, 역사소설이라니 과연...

첫장을 펼치니 당시 권력을 가졌던 무사들의 지형도가 나온다.
맨 뒤로 가니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계도와 인물 사전, 당시 시대 어휘 사전, 시간 구분, 복식, 연표 등등이 있다. 이해도 안 되면서 뚫어지게 보고 또 봤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맹우였다고 한다. 맹우라는 절친이라는 뜻이겠지?
오다 노부나가가 9살이었을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났다.

난세의 영웅들 탄생이 그러하듯,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탄생도 정략결혼의 결과물이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이 성의 성주와 저 성의 성주가
살기 남기 위해 자기 딸과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부모형제도 단칼에 베어야 하는,
싸우면서 서로 미워하고 미움받는 끝도 없는 무간지옥이다.

오늘 1권을 끝내고 2권에 들어갔다. 아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걸음마를 하는 시기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칼과 함께 살아가는 남자들의 그림자 같은 불행한 여인들의 삶만 읽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어머니 오다이는 아버지 히로타다의 계모 케요인의 딸이기도 하다.
옆 성주의 다섯 아이를 낳은 케요인은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히로타다의 아버지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 사랑하는 아내를 남에게 빼앗긴 오다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마저 그 자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야 했다.
히로타다에게는 소실 오히사가 낳은 켄로쿠, 치케이 두 아들이 있다. 치케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한날 한시에 태어났다. 오다이가 정실이라는 이유로 오히사의 둘째 치케이는 걸음마도 떼기 전에 출가를 시켜야 했다. 하지만 여자 팔자 뒤둥박이라고, 오다이의 행복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히로타다의 세력이 약해지자 주변 성주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결국 히로타다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오다이와 이혼하고 오다이를 본가로 돌려보낸다. 부록을 보니, 오다이는 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으로 나와 있다.

우리나라 조선초기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는 일들. 여자는 그저 대를 이을 씨받이,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노리개와 같은 불행한 운명이다. 너무나도 순종적으로 남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는 여인네들의 삶이 서글프다.

<이야기 일본사>를 읽다 당시 시대 상황을 나타내는 '정략결혼'에 관한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정략결혼, 210~211쪽
전국시대의 여성들은 인격마저 무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전국시대 이전의 가마쿠라 시대의 여성은 상속권까지 인정받고 있었고 그후 무로마치 시대에도 가마쿠라 시대에 비하면 그 권리가 다소 줄어든 감이 있긴 하였으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충분히 보장받고 있었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인격이 무시당하는 사례는 흔히 정략결혼에 의해서였다.
사이토 도산의 딸로 오다 노부나가의 아내가 된 노히메를 비롯하여 호죠 우지야스의 딸로 다케다 가쓰요리의 아내가 되었던 여성, 노부나가의 누이동생으로 아사이 나가마사의 아내가 되었다가 나가사마가 죽자 시바다 가쓰이에의 아내가 된 여성 등 정략결혼으로 인권을 무시당한 여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노부나가의 아내 노히메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노부나가는 매일 밤 노히메가 깊은 잠에 들기를 기다려 슬그머니 그 방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노히메가 어느 날 노부나가에게 그 이유를 묻자, 노부나가는
"부부 사이에 숨기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요. 내 진정 그 비밀을 말하리다."
라며 다음과 같은 비밀을 털아놓는 것이었다.
"일찌기 미노국의 중신과 은밀히 약속하기를 그들이 장인(사이토 도산)을 죽이고 봉화를 올릴 터이니 봉화가 오르거든 즉시 공격해 가기로 하였다오. 그리하여 매일 밤 그대가 잠들기를 기다려 미노국 쪽에서 봉화가 오르는가를 살핀 것이오. 행여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마시오."
그러나 노히메는 이 비밀을 곧바로 그의 친정아버지 사이토 도산에게 전하고 말았다. 그러자 도산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의 중신을 죽여버렸다. 결국 노히메는 노부나가의 책략에 말려들고 말았다. 사실은 노부나가가 그의 아내가 틀림없이 자신의 말한 비밀을 도산에게 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고 꾸며댄 이야기로 사이토의 분열을 꾀한 것이었다.
애정괴 신뢰로 맺어져야 할 부부 사이가 이렇게 험악해진 것은 바로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이다.
다케다의 경우 무사는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비록 부부 단둘이만의 자리에서도 칼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정략결혼으로 시집온 여성들은 결혼한 그날부터 소소한 일까지 모두 감시를 받게 마련이었다.
외계와의 접촉이 단절당한 채 저택 깊숙한 곳에 틀어박히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최후에는 자결을 강요당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지기도 했다.
인간 본래의 인격을 무시하고 자신의 누이나 딸을 결혼시킨 후 불필요하거나 방해되는 존재가 되면 그녀의 남편과 함께 모두 죽여버리는 것이 바로 정략결혼의 비정함이었다.

이리 오라면 이리 가야 하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찍소리도 못하는, 여인네들의 삶이 개보다도 못한 시대가 있었다니. 무로마치 시대나 가마쿠라 시대에는 그나마도 나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매정하고 비정하고 비정상적인 일들은 인간사회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가? 전쟁이 터지면 가장 힘이 없고 약한 존재는 여성, 노약자 들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그 남이란 가족도 포함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전쟁터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고마워해야 하나.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왜 전쟁에 열광할까?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댓글 2개:

  1. 저도 궁금한데요?
    오랜만에 들렀다 갑니다.
    헉아프리카라는 책은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잘 지내시죠?
    무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한 맥주. 저도 콜입니다.
    히히 ^^*
    -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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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랜만이네요, 양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라, <헉, 아프리카? ㅋ. 비새는 건 고쳤나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답니다. 새로 직장을 옮겼나 보네요. 적응 잘 하길 바라고, 조만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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