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숲은 통네 학교 <더불어가는배움터길>의 도서관 이름이다.
중고등 통합과정인데, 나무는 중등과정, 숲은 고등과정이다.
그래서 나무와숲. 이름이 맘에 든다. 나무와 숲의 지킴이.
뭔가 전생이 각별한 인연이 있었을 거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ㅋ. 숲은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려는지 모르지만...
나무와숲은 청소년지킴이와 어른지킴이로 구성되어 운영된다.
어른지킴이는 어머니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오늘 모임은 어른지킴이 모임이다. 처음 참가하는데 상반기 평가 모임이란다. ㅋㅋ.
돌고래, 담쟁이 두 샘과 어머니 다섯 분, 그리고 나 이렇게 모였다.
나는 1학기 끄트머리에 깍두기로 끼었다.
상반기 지킴이 활동 평가, 도서선정위원회 회의 보고, 얼마전 있었던 시음회 평가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가장 중요한 논제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책에 흥미를 가질까, 많이 읽을 수 있게 수 있게 할까? 어떻게 하면 도서관에 끌어들일까? 도서관에 오래머물게 할까 등등이었다.
예전 회사 다닐 때 회의가 생각났다. 어떤 책을 만들면 좋을까? 어떤 책이 잘 팔릴까? 그 중심에는 책을 읽는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구매자인 엄마들의 니즈가 중요하다. 엄마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어디서 파악해야 할까...등등등...
여기 있으니 엄마들이 바라는 것이 느껴진다. 패션잡지, 스포츠잡지라도 두어서, 아니 다독왕에게 패션잡지 상품권을 주어 아이들을 도서관에 오게 하자. 주니어명작이라도 읽게 해서 고전에 관심을 갖게 하자. 주니어플라톤이라는 독서토론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어 논술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지긋지긋했던 논술. 고전을 어린이눈높이에 맞게 줄이고 각색한 다이제스트주니어세계명작은 오히려 그것을 읽고 다 읽었다고 생각해서 정작 원서는 읽지 않을 수 있다, 고전은 고전 그대로 읽어야 제맛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거라도 읽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다. 그리고 대안학교임에도 논술잡지, 과학잡지에 대한 니즈가 있다.
도서선정모임에도 얼레벌레 참가하게 되었다.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현재 나무와숲의 책꽂이를 보면 성인도 읽을 수 있는 일반도서와 청소년도서로 구분되어 있다. 아직 3000권이 안 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청소년 도서도 아이들이 손이 갈 만한 책이 안 보이고, 일반도서 역시 청소년이 읽기엔 무거운 책이 많다. 그래서 더 고민이다. 뭐 행복한 고민이라 해야 할까? 책을 만들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책에 파묻혀 살면 좋겠다 생각했다. 書痴, 책바보라 해도 좋으니 책만 읽으며 지내고 싶었다. 이제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도서관지킴이로 책을 소개하고, 선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렇게 훌륭한 기회가 주어지다니 복도 많다 싶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서관지킴이에 대한 자족이 아니라, 오늘 모임의 분위기다. 지킴이들이 엄마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말 열정과 의욕이 넘친다.
"방학에 도서관 운영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희망 사항은 2번은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안 되면 최소 1번이라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모임하러 왔다가 책이라도 빌리지 않을까요?"
이때 난 속으로 '에이, 방학인데 쉬지 뭘 문을 열어.'
다른 어머니 왈, "아무때고 상관없으니까 제가 지킬게요."
"도서 선정에 대한 지킴이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책 선정도 중요하지만, 희망도서를 추천한 사람에게 책을 구입하면 문자로 알려줘서 가장 먼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대출 권수가 작으면 온 가족의 이름을 동원해서 책을 대출해 갑니다."
"막대그래프를 만들어서 누가누가 많이 읽는지 표시해요."
"학기 중에 못 읽은 애들을 위해서 방학 깜짝 이벤트를 하는 거예요. 방학 때 많이 읽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하면서요."
"저는 목요일 담당인데, 아이들에게 대출 영업을 하러 갑니다. 얘들아, 목요일은 무슨 날? 목요일은 책 대출하는 날!"
무슨 책이 갑자기 사금융 대출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대출은 1582-8210. 원캐싱원캐싱.
아무 준비없이 와서 즐겁게 웃으면서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모두 바쁘신 것 같은데 열심히 의견을 내셨다. 도서관에 가장 많이 오는 나현이의 어머니는 詩吟會도 試飮行事로 만드시며 시종일관 분위기를 재미있게 주도하셨다.
실은 어제도 책선정위원 회의가 있었는데, 어제의 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한층 활기가 느껴진다. 이런 게 열정 바이러스인가?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 옆에서 옮을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푸념, 불평만 털어놓으면 나는 해방될지 모르나 다른 사람이 푸념, 불평, 불행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의욕적이고 건강하고 희망이 담긴 긍정의 힘은 다른 이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내 불행은 내 불행으로 끝내야 한다. 밝고 긍적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나에게 그런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얼굴에 만날 인상만 쓰고 사람들과 말섞기도 싫고, 파주까지 다니는 것도 싫고 모든 인관관게도 싫고 그저 그만두는 것만이 나에게 살 길이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1년 여행이 숨통을 트게 해 주었고, 이제 뭔가 새롭게 하고 싶다는 의욕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쉬어야 할 때마다 쉬진 못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숨이 깔딱깔딱할 정도로 절박한 때는 찾아온다. 쉬어야 할 때 쉬어주는 것도 긴 인생에 크게 손해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랜 여행이 주는 쉼이 다시 일할 수 있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군요...이젠 즐기면서 일 하실 수 있으시겠네요? ^^
답글삭제좋아좋아.. 뭔가 당신에게서 훨씬 깊고 알알이 빼곡찬 삶의 냄새가 폴폴~~^^
답글삭제oldman님/여행하면서도 일은 하기 싫다 생각했는데, 지금 하는 게 자원봉사지만...뭔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는 것 같네요.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순 없겠지만요...
답글삭제수진/강의는 잘했어? 수진이야말로 한걸음, 한걸음 자기가 원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는 거 같아...화이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