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0일 화요일

101130. 여행과 거리두기

오늘 나무와숲에 갔다가 봄비한테 들었다.
요즘 통이 왜 그렇게 시니컬하냐고.

아, 통이 여행을 다녀와서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못 차려서 그런다, 했더니,

1년 정도 여행을 다녀온 다른 선생이 그러더란다.
일상생활로 복귀하려면 여행을 다녀온 기간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다.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들을 살려 보자 야심차게 학교로 복귀했던 통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펼치기는커녕, 꺼내보기도 전에,
매일같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회의, 일, 회의, 일 속에서
옴싹달싹 못하고
그 스트레스를 오롯이 술로만 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행에 다가가기
정신없는 직장생활 속 짧은 여행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어렴풋이 긴 여행을 상상했던 게 여행 떠나기 5년 전인 2004년부터였던 거 같다.
왜 일은 한꺼번에 터지는지 복잡한 가정사로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유학이나 가버릴까 생각하던 차에
통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꿈은 사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가 아닌 둘의 여행을 꿈꿀 수 있어 좋았다 해야 하나.
둘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자 했던 시기가 2007년이었다.
하지만 우리 여행은 2009년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5년 동안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여행을 생각하며,
여행지에서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며 참고 견뎠다.

여행과 마주하기
그리고 2009년 5월 1일 여행을 떠나
결코 그날이 올까 싶었던 2010년 4월 30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하는 동안 힘들고, 재미있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내 인생에 최대로 고민이 단순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오늘은 뭘 먹을까? 오늘은 어디로 갈까? 오늘은 어디서 잘까?
이 고민만 해결되면 너무나 행복했다.
어쩌다 누군가가 손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여행과 거리두기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통과 나는
적잖이 혼란스럽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방황 아닌 방황을 경험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에 복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나대로, 통은 통대로.
나는 그나마 통보다는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도 온갖 스트레스에 빨리 모든 일을 접고 싶다는 생각뿐이고,
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빡세어진 학교라는 전쟁터에
거의 무장해제된 채 떨구어져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통 일병일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인가?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우리만 이렇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가 힘들었는데,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여행한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돌아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짧은 주말 여행을 다녀오면 주초 하루 이틀 고생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살았고,
한 열흘 미국이나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오면,
시차로 한 1주일 정도 고생하다 다시 바쁜 일상 속에 뭍혀 버렸다.

1년 여행을 하고도 이런데,
2년, 3년, 5년째 여행하는 사람은 어떨까?
10년째 여행하는 사람은 아예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지금은 여행과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기.
나를 잃지 않으면서 이 생활에 적응해 가는 것.
언제쯤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될까?
그때가 오면 난 지난 여행을 잊고 생활에 찌들어 살고 있는 건 아닐지?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101126. 금. 치약

며칠 전 치약이 떨어져 남은 게 없나 선반을 뒤졌다.
아무리 봐도 남은 게 하나밖에 없어 치약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5개짜리 치약 세트를 샀다.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얼마 전 통이랑 마트에 가서
소나무소금치약을 세트로 산 것 같은 장면이 데자뷰처럼 스쳐가는데.
다시 선반을 열고 보아도 소나무소금치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로 산 치약을 선반에 넣고 나서 보니
소나무소금치약이 무려 6개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아니,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이런 경험이 또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달릴 때 팜플로나 시내에서 순례자용 숙소를 찾을 때였다.
지도를 보니 이 쯤인 거 같은데, 기념품 가게밖에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방금 내가 지나온 곳,
내가 등을 지고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바라보고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뒷쪽에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려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내가 들으려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바로 앞에 있었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치약처럼 말이다.

요즘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고 퍽퍽했던 게 사실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고 잠을 자면서도 선잠을 자는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누구나 쉽게 내뱉는 말처럼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모든 일에 감사하자고 나를 달래기는 쉽지 않다.
카르페 디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심지어 <그만두는 힘>이라는 책의 목차까지 냉장고에 붙여놓고 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오늘 아침 옴짝달싹 할 수 없는 4호선 지하철 좁은 공간에서
아침에 주머니에 급하게 쑤셔넣고 나온
에쿠니 카오리가 쓴 '絵本を抱えて 部屋のすみに'(그림책을 품고 방 한구석에)를 뒤적거리다
내가 좋아하는 아놀드 로벨이 쓰고 그린 두꺼비와 개구리 이야기가 눈에 띄였다.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 의 <혼자 있고 싶어> 중에서
"난 기뻐. 정말 기뻐. 아침 눈을 뜨면 햇살이 비추고 있어 기분이 좋아.
내가 한 마리 개구리라는 게 정말 기뻐.
그리고 너라는 친구가 있어서."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의 < 꿈> 중에서
두꺼비가 개구리에게 하는 말.
"개구리야." 두꺼비가 말했다.
"난 니가 와 주어서 정말 기뻐."
"언제나 오잖아." 하고 개구리가 말했다.
그리고나서 둘이는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길고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 보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책장을 덮고
아놀드 로벨이 쓴 개구리와 두꺼비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놀드 로벨에 대해 조사하고 그가 쓴 책을 읽고 했던 그 시절도.
아마 6~7년 전쯤 된 것 같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아놀드 로벨의 책을 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우연히 들고 나온 책에서
좋아하는 것,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해서 기뻤다.
그래, 이렇게 단순한 게 나라는 사람인데.
좋아하면, 하고자 하면 뭔가 마구마구 일을 벌리는 게 나였는데.
단점은 싫으면, 억지로 시키면 못한다는 거지만.

삶이 아무리 퍽퍽하다 해도 어느 순간 웃음짓고 있고,
삶이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어느 순간 가슴아프고 힘들어 했던 것 같다.
그조차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더 불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걸 보면 여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하자,
기왕 해야 한다면 즐겁게, 즐기며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오늘의 생각.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101120. 행복한가요?

사실 요즘 많이 우울하다.
과연 이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가?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요즘 나는 주 3일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나간다.
시작은 좋은 어린이 자연생태책을 기획해보겠다는 취지였는데,
시작부터 완전히 꼬여 버렸고, 일의 방향도 애초 생각했던 방향보다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그 시작이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던 친구가 출근 다음날부터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나서
그럼 친구와 함께 일을 해볼까 하고 나갔던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렸고,
일의 방향도 기획이 아니라 빨리 적은 돈을 들여 개발할 수 있는
외국 저작물을 찾는 일에 주력을 하고 있다.

이제 슬슬 일을 해야지 마음먹던 시기도 아니었고,
오로지 함께 하자는 친구와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일이 어긋나게 되자 그 마음을 추스리는 것도 많이 힘이 들었다.
마음 추스리는 것도 많이 힘들었지만, 1년 반 이상이라는 시간을 여유롭게 지내다
주 3일 안양에서 상암동까지 출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동안 여행에서 돌아와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다
새로 시작한 게 길학교 도서관 나무와숲 주 1회 자원활동이었고,
그러다 의욕이 뻗쳐 시작한 프랑스어 동아리 모임을 하고 있었다.
모두 화요일이니 화요일을 빼고 주 3일을 출근하는 게 뭐 힘들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더 나를 힘들게 한 건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난 나의 의욕과다였다.
친구가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남과 동시에, 나도 자연생태기획을 그만둬야겠다 하는 생각이 컸고,
그 대신이 참에 미루어두었던 내가 하고 싶었던 어린이책 기획을 하자 하는 마음에
다른 곳과 기획을 해보겠다고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다른 곳에 러프한 아이디어를 보냈더니 그중에서 자전거를 기획해 보라고 해서
역시 새로운 의욕으로 가득찼다.
그래,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구나. 내가 그렇게 만들어보고 싶어했던 자전거책을 만들어 보라니.
나의 여행 경험, 그동안 내가 모은 자료, 나의 열정으로
열심히 기획해 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만 않았다.

남들이 들으면 그렇게 게을러서 엇다 쓰냐고 비웃겠지만,
한 시간 30분 걸리는 출퇴근 거리가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지금은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쪼금 적응도 되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자전거책 조사도 하고 책도 보고, 아이디어도 내야 하고, 기획안도 써야 하는데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할 힘이 생기기 않았다.
그럼 주말에 하면 되지 않냐고?
말이 주 3일이었지, 월, 목, 금을 출근하는데,
화요일 도서관자원활동 가고, 수요일 도서관지킴이 모임을 하고 나면
결국 나는 주 5일을 일을 하는 셈이니 주말이면 녹다운이 되었다.
그 부작용으로 무한도전을 본방사수만 하다가, 나중엔 집에 들어오면 의미없이
무한도전을 무한반복해서 멍하니 보는 날이 이어졌다. 본 걸 또 보고, 또 보고.
첨엔 것도 재미있었지만, 나중엔 이게 뭘하는 건지...그러면서도 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곡기를 끓여먹은 흔적은 오래전으로 사라지고,
예전 내 삶을 직장이라는 악마에게 저당잡히고 생활했던 그때의 악몽이 다시 현실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게 아닌데.
일단은 이 상황이 뭐가 문제인가? 내가 최선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때의 해답은 내가 너무 게으른 거였고,
나의 게으름을 타파하고 밤을 세워서 자전거 기획을 하면 되는구나 하는 거였다.
결론이 여기에 다다르자 나는 더 괴로워졌다.
결국 내가 게을러서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내가 살리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회사 일에도 집중이 안 되고, 세상만사 모든 것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면 모진 것 같아도 그리 모질지 못하고 치열하지 못하고,
밤을 새워까지 기획을 할 의지도 없고,
무엇보다 난 그렇게 살기 위해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게 아니다!

지금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은 도서관 자원활동과 자전거 기획이고,
재미있는 일은 프랑스어 동아리(그놈의 오지랖으로 내가 모임을 주관하고 진행하고 있다)이고,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은 일이 자연생태기획인 거 같은데...
1년 반 이상 놀다 온 사람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일은 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떨어내야 해.
도서관 자원활동도 힘들면 이번 학기까지만 하겠다고 하면 될 거고,
프랑스어 동아리도 올해까지만 하면 되니 별 문제 없고,
자연생태기획은 12월까지 계약을 했으니 그때까지만 참으면 되고,
지금 상태에서 부담만 되는 자전거기획을 떨어내야겠다 마음먹었다.
나를 믿고 기획을 해보라고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못하겠다는 말을,
것도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건데.......쉽지 않았지만,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다 싶어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그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무한도전을 끊게 되고,
오히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해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득찼던 상황에서
그 일을 떨어내고 나니 새로운 의욕이 생기다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연생태기획에 몰입하려고 하고 있다.
비록 회사의 방향은 번역물을 찾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난 계속 머릿속으로 어떤 방향으로 기획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요즘 나는 내 주변에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해서일까? 나는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겉으로 보아도 안 행복해 보이고,
시골에 귀농해서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도 시골의 삶도 퍽퍽하다 하지,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을 발견하겠다고 대안교육바닥에서 일하고 있는 통도
이건 미친짓이라고 매일같이 절규한다.
삶의 고단함을 모르는 3~4살 아이들이나 하루하루가 즐거우려나. 슬프다.
어떻게 하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여행을 할 때는 무한도전만 보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무한도전만 보는 건 나에게 행복이 아니었다.
현실도피를 위해 무한도전을 보니 행복할 리가 없지.

현실은 녹녹치 않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점점 더 새로운 것만을 원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어렵지만, 내가 변하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쉽다.
내가 행복한 길을 찾아 가면 내 삶은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지금 나의 행복이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주변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나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 안의 욕심을 버렸다.
행복과 욕심은 동전의 양면 같다.
전에는 돈, 명예, 일에 대한 욕심으로 더러움, 치사함도 참고, 즐거움도 모르고 일했다.
그러나 난 행복하지 않았다.
욕심은 행복이 아닌 불행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하는 것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 이기적이라 해도.

나를 비롯한 내 주변사람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두 행복한가요?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32,000원짜리 일본 여행

나는 헌책을 좋아한다.
나는 헌책방을 좋아한다.
나는 동경 칸다 헌책방 거리를 좋아한다.
나는 동경 하라주쿠 Book Off를 좋아한다.

Metropolitan city 동경을 좋아하지 않지만,
칸다 헌책방 거리와
책과 CD, 만화책을 싸게 살 수 있는 Book Off가 있는 동경은 좋다.

2007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동경에 가서 헌책-주로 그림책을 무려 60권이나 사오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다.
책값은 100엔 하는 책도 있고 1000엔이 넘는 책도 있었다.
얼마치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때 환율이 700원대였으니까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내내 그때 산 60권 리스트라도 정리해봐야지 했었는데,
벌써 햇수로 4년이 흘렀다.
지금도 일본에 가고는 싶지만 환율 1400원이라는 게 꿈도 못 꾸게 한다.

그런데 오늘!
일본 동경 자료수집을 하는 셈치고 신촌 Book Off에 갔다.
2000원짜리 일본 그림책 16권을 32,000원에 샀다.
평소 헌책방에서 사는 책보다 무지무지 많은 양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헌책방 순례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살 이유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 서울 시내로 한번 걸음하기가 영 녹녹치 않은 일이라
떡 본 김에 제사라고 질러버렸다.

그런데 마음이 아주 뿌듯하다.
BooK Off라고 값이 다 싼 건 아니었다.
일본에서 운 좋으면 100엔이면 살 수 있는 책들이 여기서 10000원 넘게 파는 것도 있었고,
우습게 같은 책인데, 어떤 권은 4000원, 어떤 권은 2000원,
어떤 권은 2000원, 어떤 권은 8000원 막 그랬다. 잘 봐야 한다.
헌책으로도 복음관 책이 많았는데, 난 복음관 책을 좋아한다.

오늘 산 책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책이 많다.
얼레벌레 12월까지 석달 동안 유아자연생태전집 기획일을 하게 되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은 일주일에 세번 나가기로 하고,
오늘이 두번째인데, 나보고 일을 하자고 했던 친구가
갑자기 승진이 되어 다른 팀으로 가버리게 되었다. 이런 개나리 십장생이 있나.
잠시 욱해서 그 친구가 안 하니 나도 안 하겠다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으나,
좀더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아니어도 그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현실감을 찾게 되었다.
물론 개발까지는 아니고 기획까지만.

계속 마음만 먹고 있었던 어린이책 기획이라는 게 널브러져 있으니 쉽지만은 않았다.
뭐 이 일은 전집이니까, 이쯤에서 이 일을 그만두고
단행본 기획을 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이 일을 그만둔다고 단행본 기획을 하지 않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참에 공부도 하고, 좋은 책도 많이 보고, 돈도 벌고
1타 3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해서 오늘 일본 자료 수집을 간 셈치고 Book Off에서 책을 잔뜩 사오게 되었다.
다시 살펴보니 역시 잘샀다는 생각이 든다. 통은 눈을 부릅뜨고 싫어하겠지만...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지하철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오전엔 냉방에 오후엔 난방에 건조한 사무실에서 비비다가
북오프까지 가서 책꽂이를 뒤지다 보니 눈이 심히 아프고 피곤하다.

그래도 기분이 기분인지라 오늘 산 책 리스트를 올려본다.

프뢰벨관 자연
<낙엽의 밑에는> <しぜん・おちばのしたには>

<펭귄>
<강>
<얼음편>
<어떤 얼굴?>
<동물들의 집>
<매실>

복음관 도감라이브러리
<ちょう> 大島 進一

<ぼくの家ができる> 


<海辺のずかん>(해변도감) (福音館のかがくのほん)
海辺のずかん (福音館のかがくのほん)

にわさきのむし しゃがんでみつけた(정원의 벌레, 웅크리고 앉아서 발견) (かがくのとも傑作集)

にわさきのむし しゃがんでみつけた (かがくのとも傑作集)

ぼくらは知床探険隊(우리들은 시레토코 탐험대)

시레토코는 홋카이도 지명
ぼくらは知床探険隊 (絵本の泉)

はしのもちかた―おかあさんといっしょに

젓가락 쥐는 방법-엄마와 함께
はしのもちかた―おかあさんといっしょに

新しい単位―カラー版 (扶桑社)

새로운 단위.
新しい単位―カラー版 (扶桑社サブカルPB)

ガジュマルの木の下で―26人の子どもとミワ母さん (岩波フォト絵本)

가주말 나무 밑에서-26명의 아이들과 미와엄마
(26명의 아이들이 HIV에 감염된 고아란다...개인적으로 아주 만족)
ガジュマルの木の下で―26人の子どもとミワ母さん (岩波フォト絵本)

2010년 9월 18일 토요일

NON TI MUOVERE - MUSIC VIDEO

GEGEN DIE WAND ( HEAD-ON) - HQ Trailer ( 2004 )

아키코가 갔다

이틀 밤 자고 오늘 하루 종일 수다 떨다 돌아갔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11개월 만에 일본행 비행기를 탄다.
재미없으면 일주일만 있다 가야지 하고 온 한국인데,
생각보다 너무나 재미있어 두 달 가까이 머물렀다 한다.

함께 있는 내내 일본에 돌아가기 싫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아키코를 태워 보내며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올 1월초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만나 며칠을 함께 보냈고,
3월 태국 방콕에서 다시 만나 며칠을 함께 보냈다.
5월에 방콕에 들렀을 때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인도인지, 라오스인지 갔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일본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에 들렀다며 7월말쯤 메일로 연락을 해왔다.
마침 우리가 8월 초에 이사하니 이사한 뒤에는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답변을 했고,
짐 정리도 되지 않은 이사한 바로 다음날 놀러와 오랜만에 술 한잔 할 수 있었다.

아키코도 연락을 잘 안하는 스탈이고, 나 역시도 그렇고,
일본으로 돌아갔을까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9월 10일에는 일본에 돌아가야 한다며 8월 말쯤 놀러가도 되냐고 전화가 왔다.
마침 그때 급하게 넘겨야 할 일이 있어 며칠 뒤가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전날 올 수 없게 되었다고 문자가 왔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갔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월요일에 다시 아직 한국이라며 전화가 와서 다행이라며 수요일에 보자했다.

수요일에 놀러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고,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미적미적거리다 뭐할까 술을 마시기는 뭐하고
아침부터 수도관 공사를 하는 바람에 하루종일 소음에 시달리다
통네 학교 도서관이나 가보자 하고 4시쯤 함께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 저녁도 얻어먹고 도서관에서
아키코는 아키코가 흥미로운 책을 읽고, 나는 나대로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9시. 이젠 공사가 끝났겠지 하고 돌아왔더니 아직도 공사중.
가방을 놓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다이소에 가서 잡화를 구경하다
너무 피곤해 돌아오니 공사는 일단 정리가 된 상태.

아키코가 오기 전날도 학교 선생님이 찾아와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신 상태였고,
전날도 아키고와 2시 넘어까지 술을 마셔 너무 피곤해 오늘은 일찍 자자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키코는 잘 시간을 놓쳐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아침 8시 30분쯤 통 출근하는 걸 보고 다시 잠이 들어 12시 30분쯤 일어났는데,
아키코가 벌써 일어나 있었다. 늘 오후 2~3시까지 잔다고 했는데 일찍 일어났네.

서둘러 밥을 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고
각자 책을 보다가, 가족 이야기, 한국 미친 영어 교육 이야기, 일본 사교육 이야기,
아키코 여행 이야기-역시 여행하기엔 태국이 최고다 등등- 한국 술 문화,
한국 남자와 일본 남자와의 차이점,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
선물을 뭘로 사갈까.. 등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저녁 8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짜파게티를 끓여먹고 싶었는데, 1개밖에 없어서 진라면 2개를 끓여
김치와 먹으면서 한국사람들은 라면에 밥 말아 먹는다니
그럼 한국식으로 밥말아먹겠다 해서
밥말아주고. 그렇게 2박 3일을 있다 갔다.

아키코가 돌아가고 나니,
아키코가 한국에 있는 동안 시내에서도 만날걸,
내가 먼저 연락도 할걸,
맛있는 것도 좀더 해줄걸
-하다못해 짜파게티라도 한 개 더 사다 끓여줄걸-후회가 된다.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잘 지내겠지 생각하며 미루다
막상 아키코가 떠나가니 이제 언제 다시 만날까 아쉬움이 밀려온다.
아마 일본보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만나기가 더 쉬울 거다 이야기는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한국의 겨울을 보고 싶다고, 아마도 겨울쯤 다시 올 것 같다며 갔다.
무사히 잘 돌아가길 바라고, 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길 바랄 뿐.
카메라도 고장나서 사진도 찍지 못했는데...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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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와 영화라도 한편 볼까 곰플레이어에 들어가 본 무료영화 <빨간 구두>.

영화에 대해 아는 건 전무했지만,
페넬로페 크루즈라는 이름 일곱자와 평점 8.7을 보고 밀양 대신 선택한 영화.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45분.
영화를 보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영화를 본 느낌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천박하게 보이기 위해 앞니까지 만들어 넣었는지 끼우고
걸음걸이까지 무릎이 닫지 않게 아슬아슬하게 걷지만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예쁘고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
감독 겸 남자 주인공이었던 세르지오 카스텔리오라는 사람
참 이기적이면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면서도
아내 아닌 또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참 답 안 나오는 이기적인 남자.
그럼에도 참 자상하고 따뜻하고 능력있고 잘생기기까지 하다는 생각,
감독 겸 배우라는 점에서 독일에서 본
'Gegen die Wand(미치고 싶을 때)'에서 cahit tomruk을 맡은 Birol Ünel과 비슷하다는 생각,
unhappy ending 면에서도 비슷하다 할 수 있으려나...

기욤 뤼소의 <사랑하기 때문에>에 나오는 행방불명된 딸을 찾아
부와 명예를 포기한 정신과 의사 마크와 비슷하다는 생각.

새벽 4시. 자야 하는데 잠이 오려나.